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꿈속의 일처럼 흐릿 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이 되어가던 즈음이었다.
안방에서 엄마가 외할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나는 엄마의 반응만으로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통화가 끝나면 "외할머니야?" 하고 엄마를 놀라게 해 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큰 소리를 내며 외할머니와 싸우더니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어른도 아이처럼 소리 내며 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엄마는 외할머니께 나와 내 동생을 맡기고 싶었으나
자식을 여섯이나 길러 내신 외할머니께서는 이를 거절하셨던 것이다.
육아휴직이 없던 시절 엄마는 여러 핑계를 만들어내
휴직을 하고 우리를 길렀지만 더 이상 꾸며낼 핑계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직장을 결정할 때 그날의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물론 교사가 된 건 육아휴직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휴직 덕분에 직업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
임신과 동시에 퇴사를 고민하거나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자랑이나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사기업에 다니는 부모들도
아기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예전에 비해 기업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마냥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누구든지 육아휴직을 넉넉히 쓸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부모가 각각 1년 이상의 육아휴직을 반드시 쓰도록 하고,
휴직 기간의 급여는 나라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아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출근이나 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도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할 수 있도록...
국가의 출산 정책은 셋째 아이를 낳도록 장려할 것이 아니라
첫째 아이만이라도 잘 기를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나는 가정에서 행복한 아기를 기르는 일이
사회를 멋지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엄마나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이
한 두명만 있어도 교실 전체가 밝아진다.
사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지혜를 모아 마음 놓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첫 2년은 엄마 아빠 껌딱지였으면 좋겠고,
그 이후 10년은 아침밥과 저녁밥을 가족과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80년 인생에서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남편의 참견>
아기의 첫 일년을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와 같은 행운이 모두에게 당연해지는 세상이 오길...
그 세상은 분명 지금의 많은 상처를 치유해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