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Sep 06. 2021

육아휴직 때문에 교사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대부분 꿈속의 일처럼 흐릿 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섯 살에서 일곱 살이 되어가던 즈음이었다.

안방에서 엄마가 외할머니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나는 엄마의 반응만으로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맞히는 놀이에 심취해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통화가 끝나면 "외할머니야?" 하고 엄마를 놀라게 해 줄 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큰 소리를 내며 외할머니와 싸우더니

엉엉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것이었다.


어른도 아이처럼 소리 내며 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직장에 나가야 하는 엄마는 외할머니께 나와 내 동생을 맡기고 싶었으나

자식을 여섯이나 길러 내신 외할머니께서는 이를 거절하셨던 것이다.


육아휴직이 없던 시절 엄마는 여러 핑계를 만들어내

휴직을 하고 우리를 길렀지만 더 이상 꾸며낼 핑계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직장을 결정할 때 그날의 기억이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물론 교사가 된 건 육아휴직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육아휴직 덕분에 직업 만족도가 매우 높아졌다.

임신과 동시에 퇴사를 고민하거나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겨야 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육아휴직을 마음껏 할 수 있다고 자랑이나 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 사기업에 다니는 부모들도

아기를 키우면서 느끼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예전에 비해 기업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마냥 자유롭게 할 수는 없다고들 한다.


아기를 낳아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누구든지 육아휴직을 넉넉히 쓸 수 있어야 한다.

아니다.

부모가 각각 1년 이상의 육아휴직을 반드시 쓰도록 하고,

휴직 기간의 급여는 나라와 기업이 절반씩 부담하도록 하면 어떨까.

그리고 아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출근이나 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제도도 있으면 좋겠다.

적어도 엄마나 아빠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할 수 있도록...


국가의 출산 정책은 셋째 아이를 낳도록 장려할 것이 아니라

첫째 아이만이라도 잘 기를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나는 가정에서 행복한 아기를 기르는 일이

사회를 멋지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엄마나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들이

한 두명만 있어도 교실 전체가 밝아진다.

사회도 그럴 것이다.

나는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지혜를 모아 마음 놓고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첫 2년은 엄마 아빠 껌딱지였으면 좋겠고,

그 이후 10년은 아침밥과 저녁밥을 가족과 함께 먹었으면 좋겠다.

80년 인생에서 아이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집집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쳐흘렀으면 좋겠다.


오래오래 엄마랑 꼭 붙어 있자!


<남편의 참견>

아기의 첫 일년을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와 같은 행운이 모두에게 당연해지는 세상이 오길... 

그 세상은 분명 지금의 많은 상처를 치유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전 14화 이 시국에 직장에서 살아남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