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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의주도 미세스 신 May 10. 2021

이 시국에 고3 담임

개학과 동시에 임신 중기가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출근을 하고 우리 반 학생들을 만났다.


오! 놀라운 일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마치 꽃송이들처럼 예뻐 보였다.

그전에도 학생들에게 대체로 애정이 있었고,

자신만의 열정을 갖고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때면 경이로운 감정을 종종 느끼곤 했다.


그런데 꼬맹이가 생기고 난 뒤,

모든 학생들이 참 대견하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열심히 혹은 잘해서 예쁜 게 아니라

숨을 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졌다.


'무려 19년이나 건강하게 자라느라 참 애썼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는 우리 꼬맹이처럼 3mm도 안 되는 존재 들이었을 텐데

이렇게 건강한 육체를 갖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해냈구나.

심지어 밝은 얼굴로 나를 보고 웃어주고, 이야기를 하고, 또 어떤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구나. 장하다. 장해.


어쩌면 그동안 내 속을 썩이던 말썽꾸러기들이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대던 학부모들마저도

지금 같은 기분이라면 모두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산부의 몸으로 고3 담임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특히, 수능으로만 대학을 가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한 학생이 쓰는 대학 원서 개수가 평균 10개가량이고

생활기록부 관리,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준비, 수능 최저 준비 등

한명 한명 손 갈 일이 참 많다.


게다가 내가 맡은 반에는 꽤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았고,

다양한 전형에 지원하기를 희망하였다.


9월부터 1월까지

손 본 자소서를 고치고 또 고치고,

생기부를 읽고 또 읽으면서 면접 예상문제를 만들고,

비대면 면접 동영상을 촬영해주고,

최저등급 준비하는 학생들은 예상문제와 기출문제를 뽑아 실전 연습을 시키고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은 아주 조금이라도 취업이 잘 될만한 학교와 학과를 찾아가며...



집에 돌아와서는 청각이 발달하기 시작한 꼬맹이에게

태교 음악과 동화책을 들려주다 잠드는 일상을 반복하였다.

바쁘고 힘들고 보람되고 행복한 날들이었다.


다행히 반 학생들의 대부분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였고,

세속적인 기준에서 최고의 진학 성과를 얻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교육이나 문화적 혜택을 충분히 받기 힘든 지역이다.

이런 곳에서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한다는 것은

출세나 성공을 떠나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은 굳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다양한 자극을 경험할 수 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농어촌지역의 학생들에게 '인 서울'이란

'나도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존재구나!' 하는 자신감을 의미한다.

부디 학생들이 대학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갔으면 한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이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 때

차별 없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열린 사회가 되고,

이는 또다시 우리 꼬맹이가 즐겁게 살아갈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생각.


꼬맹이를 만나기 전에는 이런 차원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직 많이 미숙하지만...

엄마가 되어가면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교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대학생이 된 꽃송이들, 잘 지내고 있니?


<남편의 참견>

아가야 혹시라도 대학이 가고 싶거든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된다. 근데 안 가도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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