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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롱 Oct 14. 2020

기억의 판도라 상자를 둘러싼 충격 실화 다큐멘터리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

사고로 내가 누구인지 잊었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나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맡겨야만 한다면...

그리고 어떤 게 들어있을지 모르는 기억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한다면 여실 건가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다큐멘터리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오>를 보고 기억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출처 : 넷플릭스


줄거리


18살이었던 알렉스가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전부 잃어버렸던 과거를 회상하며 시작한다. 깨어난 알렉스는 쌍둥이 마커스만 기억할 뿐 부모가 누군인지, 어디에 살았는지, 누구인지 본인에 관한 것은 모두 사고와 함께 사라져버렸다. 퇴원 후 알렉스는 마커스의 기억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마커스는 사물의 이름부터 신발 끈 묶는 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며 알렉스의 친구들과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알렉스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새로운 기억도 잃어버릴까 매 순간 사진을 찍었던 알렉스는 과거의 기억을 찾기 시작하고 마커스는 다른 집과 다름없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말해주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우애 깊은 형제의 이야기 같았다. 이다음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이다.

이야기의 반전은 췌장암으로 아버지가 죽고, 5년 후 어머니도 계단에서 굴러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슬퍼했던 알렉스와 달리 마커스는 아버지 때처럼 슬퍼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별채에서 지내며 집 현관을 들어설 수 없었던 형제는 유품 정리를 위해 드디어 열쇠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50파운드가 가득한 병이 널려있었고 옷장에는 성인 용품으로 가득했다. 알렉스는 충격받았지만 마커스는 또 알렉스와 달랐다. 그리고 형제에 관한 물건도 나오기 시작했다 아기 옷, 사진, 뜯지 않은 선물들. 그리고 어머니 방 안 비밀 서랍에서 10살쯤 되는 두 형제의 머리 부분은 없이 발가벗은 몸만 찍은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마커스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알렉스가 모르는 진짜 기억에 관한 이야기가.


(스포주의)


어머니는 사실 소아성애자였고 알렉스와 마커스가 12살 때부터 성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마커스는 알렉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켜줬던 것이었다. 우리는 멋진 집에 살고 평범한 집처럼 부모님은 우리에게 아주 상냥하게 대해주고 프랑스에 가족여행도 갔었다고. 진실과 거짓 중 거짓말로 알렉스의 기억을 채웠던 시간에 대해 회상한다. 마커스에게도 비밀을 간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렉스에게 새로운 기억을 주기 위해 어머니의 역겨운 위선을 지켜보고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인도 마치 없었던 일처럼 기억을 지웠다.

하지만 이 거짓말도 발가벗은 사진을 발견하면서 끝나버렸다. 알렉스는 거짓을 말했던 마커스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진실을 모두 말해주길 바랐으나 마커스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알렉스는 마커스에 의지하지 않고 어머니의 유품을 뒤져가며 본인이 기억을 스스로 찾기 시작했지만 마커스가 꾸민 기억과 진실 앞에서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흰 백발이 된 쌍둥이는 서로를 마주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시작한다. 마커스는 왜 알렉스에게 거짓된 세상을 줄 수밖에 없었는지, 알렉스는 내가 누구인지 찾기 위해 왜 괴로운 기억이라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알렉스는 혼자 남아 마커스가 진실을 이야기한 영상을 보고 어머니가 일삼은 성적 학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끔찍해서 할 수가 없네요.) 다시 마주한 형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같이 과거를 극복하기로 약속한다.


나쁜 기억은 잊어버리는 게 좋을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를 남기는 나쁜 기억은 있기 마련이죠. 저 또한 그런 기억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없었던 일처럼 잊어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그 기억은 나에게 정말 끔찍한 고통을 줬지만 그 기억이 없는 나는 지금의 나일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도 정체성의 일부분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알렉스의 마음을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아요.


하지만 마커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죠. 끔찍한 기억을 알려주는 것보다 형제에게 거짓이지만 행복한 기억을 주고 싶은 마음을요.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서 느꼈을 고통까지.


마커스가 본인도 알렉스가 믿는 것처럼 우리 집은 정상 가정이라고 믿으며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을 때 너무 슬펐습니다. 과거의 학대를 전부 상세하게 기억하고 몇십 년이 지나 중년이 된 나이에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만큼 잊지 못할 고통이었겠죠. 그걸 혼자 견뎌온 마커스의 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두 사람의 기억과 과거를 강렬한 방식보다 담담하게 이어나가며 형제가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알렉스가 마지막에 말했던 것처럼 이제 하나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함께 좋은 기억만 쌓기를 바랍니다.


* 다시 돌려보게 되면 진실이 나오기 전 두 형제의 침대가 나오는 장면에서 한 사람만 나오는 장면들이 있는데 왜냐하면 다른 한 명은 어머니가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데려갔기 때문이죠.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에는 두 사람 모두 누워있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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