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에 몸을 맡기고 분노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1. 도로 위는 무례함으로 가득하다, 라는 사실은 운전자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1.1. 1차선은 좌회전이고 2차선은 직진인데, 직진 신호는 길고 좌회전 신호는 짧다(어쩌면 통행량을 고려한 신호 설계가 이루어지지 아니하였을 수도 있다; 혹은 반대편 직진 차로의 통행량이 많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그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1차선을 오래 기다려야 하고 2차선은 금방 지나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꽤 많은 운전자들이 2차선으로 빠르게 이동하다가 1차선 맨 앞에서 끼어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 막히지 않아도 되는 2차선도 막히게 된다. 1차선에서 오랜 시간을 양심적으로 대기하던 사람은 바보가 된다.
1.2. 앞차와의 간격은 좁고 뒷차와의 간격은 넓은데(내가 그 줄의 마지막에 위치하는 경우), 옆 차선의 차가 속도를 줄이면서 뒤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 차의 앞으로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한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아주어야 한다, 혹은 분노에 가득차 끼워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악셀을 밟아 앞 차와의 간격을 - 안그래도 좁은 그 간격을 - 좁혀야만 한다, 어쩌면 클락션도 길게 울려야 한다.
2. 또한 도로 위는 제한능력자들로 가득하다, 라는 사실 역시 운전자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2.1. 그들은 사이드미러를 제대로 볼 줄 모른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이드미러를 통해서 뒷차의 속도감을 볼 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 그래도 거울을 보는 방법만을 알고 거울에서 나타나는 정보를 제대로 해석할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1차선의 차량이 자신보다 10km/h 정도는 더 빠른 상태에서 깜빡이를 키자마자 끼어들기를 시작한다(혹은 방향지시등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끼어들기를 시작한다). 1차선의 차량은 급히 속도를 줄여야만 한다.
2.1.1. 이는 1.의 사례들과는 다르다, 1.의 사례는 운전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다. 2.1.의 사례는 배려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운전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2.1.1.1.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1.의 사례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있으나, 2.의 사례에 대해서는 분노해서는 안된다. 타인의 무능력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2.1.1.2. 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반박될 수 있다. “그들의 무능력에 대해서 분노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력함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하고자 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분노할 수 있다”.
2.1.1.2.1. 라는 말은 역시 다음과 같이 반박될 수 있다. “너의 말은 일응 타당하다. 그러나 자신의 무능력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인지할 능력 역시 없다; 이것은 메타적 무능력함이다. 무능력함에 대해 분노해서는 안된다는 명제에 동의한다면, 무능력함에 대한 인지적 무능력함에 대해서도 분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3.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3.1. 우리는 매번 배려해주면서 손해(또는 피해; 1.의 사례에서는 손해라는 말이 더 적절하고, 2.의 사례에서는 피해라는 말이 더 적절하다)를 보며 살아가거나, 자주 화를 내면서 분노에 가득차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는 것 자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아니다, 우리는 흐름에 몸을 맡김으로써 그와 같은 상황을 -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 최소화할 수 있다.
3.2. 그것은 최대한 앞차와 뒷차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운전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백미러를 자주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교통흐름을 자주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3.2.1. 뒷차가 빠르게 다가오면 나도 속도를 올린다; 앞차가 느리게 나아가면 나도 속도를 늦춘다. 어떤 속도를 내가 의지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앞차와 뒷차가 결정하는 속도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몸을 맡긴다. 판단하기보다는 인식한다.
3.2.1.1. 옆차선에서 급하게 끼어드는 차가 있으면 앞차와 뒷차 사이의 간격이 불균형해진다. 그러면 다시 끼어든 차를 앞차로 하여 앞뒤 간격을 맞춘다.
3.2.1.2. 뒷차가 빠르게 다가와 속도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뒷차가 계속해서 헤드라이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다면 어떻게 하는가? 그러면 오른쪽 차선으로 비켜준다.
4. 흐름을 거스르려고 하면서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에 따라 운전한다. 급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다소 민첩하게 움직이고, 그들이 너무 급하다면 비켜선다. 여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여유롭게 움직이고, 그들이 너무 느리다면 벗어난다. 무례한 사람이 있으면 가볍게 인사하고 비켜서준다.
4.1. 라는 것은 운전 태도 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의 태도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