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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Feb 14. 2020

사람은 누구나 거북이가 된다.

김자까의 68번째 오분 글쓰기

사연 주신 분: 황모씨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찾아주시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모티브로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채널 내 아무 영상 밑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땅만 보인다. 목이 앞으로 구부러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오랫동안 구름을 못 봤다.
구름이 무슨 색이더라?
주황색인가…
아이고 목이야.
허리를 뒤로 꺾어 억지로 목을 쳐드니
용궁 의원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귀가 무척 긴 의사 선생님이 나를
맞았다.

'에고 어서 오세요. 어디가 아파 오셨나?'
나는 구름 같은 주황색 의자에 앉아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혀 그를
내려봤다.
'아 선생님 내려봐서 죄송합니다.
목이 펴지지를 않네요. 제가 매일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만 치다 보니 고개
가 이렇게 됐네요. 도저히 펴지지가
않아요'

의사는 간호사가 막 꽂아놓은 엑스레
일르 보면서 나에게 설명했다.
이리저리 살펴보는 모습이 어쩐지
신나 보인다.

… 신난다고?

'하하, 거북목 증후군이군요. 목이
거북이처럼 됐어요. 혹시 거북이를
좋아하시나?'

'…네?'

'아니 아니 쏘 오리. 글쎄요. 이건 참
힘들겠어요. 고생이 많네요.
음 근데 이건 현대 의학으로는 고치기
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아니 애초에
키보드가 목 아래에 있는 걸 어떡합니까
.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면 고개를 숙여
주워야지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거북이가 되어갈 수밖에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뭔가 잘 못 들었다는 생각에 새
끼 손가락으로 귀를 깊게 팠다.
한데 의사가 이번엔 소리를 내며 웃
는다.

'카카칵.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거북
목 증후군이라는 건 생물을 나누는 기
준이 에…계, 문,, 강, 목 이런 식으로
나뉘거든 그중에 사람은 영장목인데
현재 환자분은 거북목이 되어가는 중인
거죠. 다시 말하면 환자분은 지금 사람
에서 거북이가 되어가는 중이셔'

'셔…?'

'또 보자, 배가 나오는 게 고민이다?'

'…어 너무 앉아서만 일하다 보니 배가
계속 나오네요'

의사는 이번에는 자신의 기다란 귀를
수염 쓸 듯 손으로 한번 쭉 잡아당겼
다. 꼭 토끼귀 같다.

'으음 보자, 통통배네?'

'통통… 배요? 선생님?'

'통통배 증후군이네. 이건 거북목이라
세트예요. 보쇼. 사람이 바로 거북이가
되면 헤엄을 못 치잖소? 그러니까 배라
도 있어야지. 카카칵 아이고 웃겨
어떡하다 이 지경이 되셨어 그래!'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
다.
몸을 일으켰다.

'아이고 그냥 누워있어요. 어허 어딜?
다쳐요 다쳐. 제가 다 봐드린다니까.
에 그리고 마지막은 다이어트가 잘
안된다? 식욕 조절이 안 된다는 거죠
?'

'어…'

'혹시 술을 드시나요?'

'… 술 먹죠 저녁에 치킨이랑'

'음 그래서 간이 커졌구먼. 지금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요'

'간이 뭐라고요?'

'아차! 내가 뭐라고 말했나요?
그게 아니라, 간이 너무 커졌다는 말입
니다. 그래서 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이 간이라는 게 사람의 담력을 관장하거
든. 해서 간이 커지면 자기 몸이 어떻
게 되든 큰 걱정이 안 되게 되어있어요.
뱃살은 찌고 목은 구부러지고 몸에
이상이 와도 말 그대로 살만 찐 거북
이가 돼도 전혀 걱정이 안 되는 겁니다.
차라리 잘 된 거지.
사람이 거북이가 되다니.
그게 맨 정신에 버틸 수 있는 일입니까
나처럼 말이요.
내 빨간 눈을 봐요.
솔직히 의사인데도 받아들이기 힘들어'

의사가 대뜸 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빨갛고 빨간.
마치 토끼눈 같다.
그리고 기억났다.
용궁 의원.
설마 진짜 용궁인가?

황급히 일어나 진료실을 뛰쳐나왔다.
등 뒤로 토끼귀를 가진 의사가 깔깔
웃으며 소리쳤다.

'카카 카. 이놈 거북아 내가 두고 보자
고 했지. 아무리 도망을 가봐라. 구
부러진 목이 다시 펴지나. 네 이놈
옛날에 내 간을 빼가려고 한 대가는
두고두고 갚아줄 거야!'

가까스로 발을 굴러 병원 밖으로 나왔
다. 버스 정류소에 서 있는 사람들은
헉헉대는 나를 보지 못했다.
모두 핸드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너무 골똘히 바라보는 탓에 목이 앞
으로 한자씩이나 튀어나와 있다.

다른 가게의 사람들도
무슨 작업을 하는지 노트북을 골똘하게
바라보고 있다. 눈이 빨갛다.
핏줄이 이리저리 뻗쳤다.
다들 의사와 같은 빨간 눈이 다.

세상에 온통 거북이와 토끼가 살고 있
다.

소름이 돋아 목을 만져보니 이미 사람
의 목이 아니다.
잽싸게 가방을 벗었다.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면 목이 돌아올까
싶어서.
하지만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건
딱딱하게 굳어 마른 진흙처럼 갈라진
거북이 등껍질이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사람은 누구나 거북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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