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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Feb 15. 2020

내가 티비를 끄자,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김자까의 69번째 오분 글쓰기

사연 주신 분: 구모군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모티브로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내 친구 별명은 선인장이다. 머리카락
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전자파를
극도로 싫어해서다.
친구는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고 집에
는 흔한 전기매트 조차 없다.

언젠가 이유를 물어보니 간단히 전자
파를 싫어해서 그렇게 했단다.
그럼 보일러는 어떻게 뜨냐고 물어보니
한 마디 한다.
'보일러도 전자파가 나와?'

물론 나한테 해가 될 건 없었으므로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어느 날 친구가 우리 집에서 자고 갈
일이 생겼다.

그런데 내가 밤늦게 티비를 보고 있
었고, 친구가 그걸 모르고 전원을
껐다.
난 티비를 다시 켜고 누워서 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친구는 말없이 있다가 내 눈치를
살피는가 싶더니 잠시 후 티비를 다시
껐다.

일어나 왜 자꾸 티비를 끄냐고 하자
자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티비는 전자파가 심해서 자기가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내가 이야기했다.
'나는 티비를 틀고자도 잠 잘 자거든
그냥 틀고 자면 안 돼? 어두우면 잠이
안 와'

친구가 혼잣말 하듯이 대꾸했다.
'몸에 안 좋은데'

평소라면 알았다고 하고 티비를 끄고
잤을 텐데 그날따라 오기가 동했다.
'저기 베란다에 선인장 있는데 그거라
도 끌어안고 자던가 선인장이 전자파를
막아준다잖아… 여기 우리 집인데 그냥
자면 안 돼?'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티비가 다시 켜졌고
문이 열렸다 닫히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가 정말 선인장을 들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기가 차서 이불을 끌어안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꿈에는 선인장이 나왔다.
그런데 선인장의 꼭대기에 있던 꽃이
뽁 하고 열리더니 그곳에서 친구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친구는 선인장 인간이었다.

나는 꿈에서 무궁화 인간이었다.
꿈에서는 해와 달이 매우 빠르게 뜨고
졌고 순식간에 한 달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그러니까 무궁화는
꽃을 몇 백송이나 피우고 떨어뜨렸다.
하지만 그동안 선인장은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했다.

언젠가, 선인장은 꽃을 피우기 까다롭
다는 글을 본 일이 있다.

그게 꿈에서 꽃으로 묘사되어 나온 건가
싶었다.

잠에서 깨니 친구가 뜬 눈으로 티비를
쳐다보고 있다.
도무지 잠이 안 오는 모양이다.
내가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껐다.
예민한 성격의 친구.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해 그 강박증을
고쳐주고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만약 친구가 선인
장과 같다면 억지로 나와 같은 무궁화
로 바꿀 수 있을까?
나와 다른 또 다른 친구들이 떠올랐다.
나팔꽃 같은 친구, 장미 같은 친구,
튤립 같은 친구, 진달래 같은 친구,
모두 모두 성격이 다르다.

친구는 갑자기 꺼진 티비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나도 친구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렇게 좋을까
그제야 친구는 편하게 잠에 들었다.
자는 모습이 꼭 꽃과 같다.

제목: 내가 티비를 끄자, 그는 나에
게로 와 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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