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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Feb 16. 2020

맹수를 위한 나라는 없다

김자까의 70번째 오분 글쓰기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모티브로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왜 펭귄이 이렇게 큰 인기를 얻고 있
는거지?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에 이어 이제
펭수까지 왔다. 다음은 또 뭘까?
귀여운 건 인정한다지만 왜 하필
펭귄일까?
굳이 머나먼 남극까지 가서 펭귄을
스카우트해 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박맹수' 씨는 모처럼 찾아온 목욕탕
에서 샤워기를 들고 한참 생각했다.
뜨거운 김이 머리에서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그런데 너무 골똘히 생각하느라
자신의 머리가 빨갛게 익는 줄도 몰랐다.

기어이 뜨거운 물이 얼굴에까지 닿자
깜짝 놀라 빨개진 머리를 슥슥 문지르
고 치약을 쭉 짰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는 동안 또 생각이
떠올라 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치약 물이 입 밖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도채에 왜 펭인이지) 도대체 왜
펭귄이지?
(그웨) 그래 (아이사어도 이찌)
아기상어도 있지
(그언 또 왜 그언거지) 그건 또 왜
그런거지? (사어) 상어?
(사어가 기여우가) 상어가 귀여운가?
(카르르 퉤)
상어한테 물리면 몸이 절단되는데.
왜 익숙하지도 않던 동물들이 이렇게
인기를 얻게 되는 거지?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나'


샤워를 마친 맹수 씨는 욕탕 문을 열고
나오면서도
타월로 몸을 닦아내면서도 계속 중얼
거렸다.
그의 옆으로 벌거벗은 사람들이 신나게
욕탕으로 들어섰다.
'혹시 내가 질투하는 건가?
펭귄 따위에게? 난 사람이잖아 그만
하자… 펭귄이 뭐라고…
아냐! 질투할만해 인기가 많아도 너무
과도하잖아! 연말에 펭수가 보신각
종도 치던데 참나, 하다 하다 이제는
펭귄이 종도 치다니,
나도 수자 돌림인데 왜 나는 펭귄
만큼 인기가 없는 거야?
정말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맹수 씨는 거울을 보고 중얼거리면서
머리를 말렸다.
그리고 머리가 마르니 면봉을 들었다.
거울에 전라의 맹수 씨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가 잠시 멈칫했다.
거울 속 맹수 씨의 손이 상하로 크게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면봉을 넣으면 귀를 다칠 것
같다.
피가 흐를 거다. 철철철.
참 한심해 보이겠지.
"아마… 펭귄을 질투해서 분노에 손을
떨다 면봉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람"
으로 뉴스에 나올지도 몰라.


맹수 씨는 눈을 깜박거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참으로 보잘것없다.
뭐 하나 자랑스러울 게 없는 모습.
그 흔하다는 복근도 없다.
올챙이 마냥 배만 볼록 나왔다.
조만간 올챙이도 크게 유행하지 않을까.

그때는 나도?


그리고 그 순간 귀 바로 뒤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맹수 엉덩이에 차가운 금속 물체가
닿았다.
'누구?'
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누군가가
맹수 씨가 뒤를 돌지 못하게 엉덩이를
세차게 밀쳤다.
'어허 그대로 있어 엉덩이에 구멍 나기
싫으면!  박맹수 씨?
우린 펭귄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당신 왜 우리 뒷조사를 하지?'

거울을 보니 하얗고 검은 무늬를 가진
물체가 보였다. 하지만 거울에는
그 물체의 머리 윗부분만 살짝 비쳐서
전체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저, 그게 확실히 펭귄의
머리 윗부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펭귄 머리와 맹수 씨의 탱탱한 엉덩이가
거울에 비쳐 평행으로 놓여있다.

'누구시오?'

'말했잖소. 펭귄 협회에서 나왔다고.
최근 누군가 펭귄들의 인기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첩보를 받고 왔소.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이지? 제정신인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협회라니, 설마, 역시 그럴 줄 알았
어, 흑막이 있었군. 펭귄 협회가 대체
무슨 조직이지? 어떻게 동물들이
인간 사회에 침투한 거지?! 너희들은
우리와 아무 연고가 없었잖아. 호돌이
는 그렇다 쳐도 펭귄이라니 대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어허 그거까진 알 거 없어, 당신
박맹수 씨. 지금부턴 그 생각을 멈춰야
할 거요. 무슨 말인지 알지? 머릿속의
그 생각을 당장,  멈. 추. 라. 고
닥치고 뽀로로와 펭수를 즐기게.
아기 상어도 마찬가지야.
만약 말이지 내가 아니라 상어 조직
에서 나왔다면 당신 몸은 벌써 두 동강
났을 거요'

맹수 씨는 조심스럽게 팔을 돌려 엉덩이
에 느껴지는 펭귄의 총을 잡았다.

'잠시만… 그럼 한 마디만 하게 해 줘'

거울 속 검은 물체가 움직임을 멈췄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워, 내 이름도
맹수잖아. 박맹수
펭수처럼 수자돌림인데 난 항상 방구석
신세라고. 사람인데 어째 동물보다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 같아. 개 팔자
가 상 팔자라더니. 이제는 펭귄 팔자가
상 팔자가 된 것 같아.
차라리 나를 펭귄 협회에 데려가 줄 수
없어? 혹시 신발 같은 거 신나? 내가
신발이라도 닦겠소'

그림자가 가볍게 흔들거린다.

'휴 가엾은 인간 같으니, 글쎄
원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아기 상어 노래를 알고 있나? 우리가
떠나고 나면 이 목욕탕에서 나가지
말고 그걸 계속 부르게
그게 조건이야. '때'가 되면
조직원이 당신을 데리러 올 거야'

'때가 된다고?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
지?'

'뜨거운 물에서 때가 불면 그때가
때야, 때밀이 아저씨가 자네를 부를
걸세'

'정말? 그럼 되는 거야? 나 할 수 있어
시켜만 준다면 뽀로로 주제가라도 밤새
도록 부를 수 있다고'

잠시 후 검은 물체가 사라졌고 서둘러
쫓아가 보니 뒤뚱거리는 그림자가 탈의
실 옷장 속으로 휙 하고 사라졌다.
서둘러 열어보았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
다.

그저 옷장 안에 펭수 열쇠고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다시 걸어와 거울 앞에 섰다.
뒤편에 목욕을 마친 사람들이 평상에
앉아 계란을 까먹고 있다.
티비에는 또 펭수가 나온다.
거대한 몸집으로 펭하! 하고 소리를
지를 때마다 사람들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맹수 씨도 일부러 사람들의 앞을 지나가
며 괜히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지나가 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가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욕탕 문을 밀고 들어섰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아기 상어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기 상어 뚜루뚜뚜 귀여운 뚜루뚜뚜'

그렇게 노래를 부르자
곧 목욕탕 이곳저곳에서
돌림노래처럼 구슬픈 목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가슴이 저미어온다.
모두 펭귄이 되고 싶어 한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맹수를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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