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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Feb 21. 2020

오리온의 특급 임무

김자까의 72번째 오분 글쓰기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모티브로 색 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그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질소 포장을 담당했다.
그의 동료는 그가 질소를 담으면
봉투를 붙였다.

그가 하는 일은 이렇게 간단했고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컨베이어 벨
트 위에서 일어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게 참 힘들었다.
일 자체는 쉬웠지만 질소만 포장지에
충전을 하다 보니 뭐랄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와 같은 종류의
고민들.
정확히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미
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 보고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초코파이 봉지에
바람만 불어넣다 보니

이 거대한 제작공정에 자기 하나쯤
빠져도 문제 될 건 없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든 것이다.
그리고 이 생각은 확대되어 자신 하나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단순한 일은 이처럼 사람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법인 것 같다)

그러나 회사 벽보에는 그런 그의 생각
과 다르게 자신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라는 유명인들의 명언이 도배가
되어 있었다.

또한 동료들 또한 우리가 하는 일은
초코파이 제작 공정 중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고
그래도 그가 재차 고민을 하면
(나 하나쯤 없어도 괜찮지 않아?)
삶의 의미는 자신이 부여하기 나름이며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으니 의미
를 스스로 부여해보라고 말했다.

그는 메모장에도 되풀이 적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일을 이룬다.
큰 기계의 나사 하나는 보이지 않을 만
큼 작지만 그 기계를 이루는 중요한
부품이다. 이 세상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는 다른 일을 구할까 고민이 될 때
마다 노트를 들여봤다.
그래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세상에 일의 중요하고 덜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하루 종일 질소만 충전하는 일은
역시나 너무 단순해서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든 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일하는 동안 회사에는 티브이가 틀어져
있었다.
주로 생활의 달인과 극한직업이었는데
둘 다 사소하지만 성실한 노동의 의미
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도 감명을 받아 언젠가 질소 포장의
달인이 되겠노라는 꿈을 꾼 적도 있다.


그래 다시 생각해보자. 맞는 말이다.
초코파이에 질소가 빠지면 안 되지!
만약 질소가 없으면 초코파이는
소비자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완전히
뭉개질 것이다.
열심히 만든 초코파이가 내가 넣는 공
기 한 줌으로 인해 고객의 집까지
무사히 실려가다니.
마치 인공호흡 같다.
공기 한 줌이 존재 하나를 살리는
기적이 인공호흡 외에도 존재하다니!
그것도 이 오리온이라는 과자 회사에!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정신이
뭉개지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듯
하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를 달래며
일주일 동안 초코파이 354369개의
질소를 충전했고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휴식시간 노곤한
졸음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정신은 아주 자연스럽게
육체를 이탈해 태양계를 넘어 먼 우주로 갔다.

그곳엔 오리온이라는 별자리가 있었고
왠지 눈에 익은 행성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의 주민이 되어 살고 있었다
근데 오리온 행성은 항상 공기가 부족
해 숨을 쉬기 힘들어
주민들은 늘 고통에 빠져 살고 있었다.
특히 대기 중에 질소가 부족했다.
오리온 행성의 과학자들은 밤낮없이
질소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도무지 적절한 행성을 찾을 수가 없었고
오랜 탐험 끝에
수십광년 떨어진 지구란 곳에서 질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오리온 행성인 들은 몇 번의 실패 끝에
지구인으로 위장 전입하는 데 성공했고
마침내 오리온이라는 회사를 차려
봉투에 지구의 풍요로운 공기를 담는 데
성공하지만……
그랬지만……


점심 끝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그는 잠이 깨어 다시 정신이 돌아오자
자기가 혹시 계인이 아녔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 이 봉투에 질소를 담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런데 이후의 기억이 없다. 그 이전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포장지에 질소를
넣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는 너무 방대한 양의 초코파이를 포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포장을 하지 않는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지구에 온 목적을 어렴
풋이 깨달은 그는
(이미 자신을 외계인이라 단정한 그는)
이후 초코파이 봉투에 질소를 한 움큼씩 추가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오리온 주민들을 위해!)

또 회사에 건의해 다른 과자 봉투에
질소들을 더욱 넣자고 이야기했고
그 건의는 웬일인지 아주 쉽게 받아들여져.

그는 점점 오리온 회사의
모두가 자신의 고향사람이라고 착각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초코파이 하나를 들고 하늘을 올려보며
상념에 빠졌다.
저 세 개의 오리온 별자리 중에
자신의 행성이 있다.

이것을 어서 전해주어야 할 텐데.
그는 빵빵한 초코파이를 강하게 움켜
잡았고 아직도 부족한 공기에 신음하고
있을 오리온 행성 주민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너무 간절했던 탓일까.
손에 힘이 들어가
봉투가 빵! 하고 터졌다.
그 바람에 그는 간신히 알게 된
자신이 지구에 온 목적을 잊었고
다음날 다시 끝없이 다가오는 초코파이 들의

질소 포장에 집중했다.
(꿈의 기억이란 이처럼 사라지기가
쉬운 것일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마침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증거를 매일 쏟아지는 질소 포장
과자들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오분 글쓰기 끝

제목: 오리온의 특급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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