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오늘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친구는 소설 모모의 주인공 '모모'같다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친구는 늘 깊게 듣고 기다렸다가 적절 할 때 맞장구를 쳐준다. 그 타이밍이 매번 절묘해서 나는 그 친구를 참 좋아한다.
그러다가 하루는 궁금한 것이 생겨 물었다.
'너는 오늘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네?'
친구는 느릿느릿 입을 떼려다가 내가 다시 말을 시작하자 입을 닫고 또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내가 질문을 또 던졌고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멀뚱히 쳐다본다.
'나는 너에게 어떤 친구야?'
친구는 질문을 듣고 콜라를 먹다 사레 가 들린 듯 기침을 콜록콜록하더니 가만히 생각을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음… 콜라 같은 친구?'
친구가 한 마디 하고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코… 콜라?'
'응 콜라'
'그게 무슨 말이야?'
'너는 시원시원하고 답답하지 않잖아 또…'
'오 좋은 거네? 또?'
친구는 콜라를 유리컵에 조르륵 따랐다 특유의 느리고 긴 이야기가 시작됐다.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우리의 대화가 이 유리컵이라고 한다면 너는 콜라 같은 사람이라 그런지… 어딘지 시끌벅적하고 통통 튀는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 거품처럼 기분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고 다 잘 될 것 같아서 설레기도 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텅 빈 것처럼 허전해져. 거품이 빠져서 남는 게 없는 느낌?'
나는 느닷없는 기습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친구를 쳐다봤다.
'음 오해할 수 있겠다… 그게 네 탓이라는 게 아니고 우리 대화가 그렇다는 거지… 너는 내 고민을 이야기하면 항상 속 시원한 해결책을 주잖아 마치 내 고민은 고민도 아니었던 것처럼… 뭐든지 단숨에 답을 내는 모습이 부러워.
마치 톡톡 쏘는 탄산수같이 삶의 텁텁한 부분을 해소시켜줘…
물론 직설적인 화법을 쓰니까 자극적 이라고 해야 하나 너의 말을 한 번에 삼키기 힘들 때도 있지만 삼키기 어렵다고 내내 문제를 안고 살아가기엔 알약 무서워하는 애처럼 어린애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난 너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배우는 자세가 돼.
결론은 그냥 네가 콜라 같아서 좋다고. 다만 콜라를 살살 따르면 거품이 안 생기는데 빨리 따르면 거품이 뜨고 남는 게 없잖아?
나는 주로 너랑 만나면 들을 때가 많 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거의 못 하니까
콜라를 천천히 따르는 것처럼 네가 말을 좀 느긋이 한다면…
말하자면 서로의 대화 속도를 맞출 수 있다면
집으로 가는 길에 너와 나눈 대화가 좀 더 많이 유리잔에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