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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Jul 04. 2020

나는 러닝맘, 당신은 전업아빠

 * 아주 사적이고 주관적인 육아휴직에 대한 생각입니다.      


모든 엄마와 아빠는 그냥 ‘엄마’이고, ‘아빠’이지만 굳이 엄마와 아빠의 종류를 나누자면 나는 현재 러닝맘(Learning Mom)이고, 남편은 전업아빠(Full-time Papa)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 이후로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는 있지만, 미국에서 나는 학생이고 남편은 그냥 아빠다.      


작년 12월, 추운 겨울 한국에 있는 집에서 이곳 공항까지 24시간이 넘는 여정을 거쳐 악명높은 미국 입국심사대에 도착했다. 소문대로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6개월 아기, 기나긴 비행을 견디기 위해 준비했던 어마무시한 양의 기내화물과 지친 몸을 이끌고 입국심사를 기다렸다. 무표정한 덩치 큰 아저씨가 우리를 불렀다.     


“오, Ms. Kim이 F1(유학생 비자)이고, Mr. Kim이 F2(동반자 비자) 맞아?”

“응, 맞아.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할 예정이야.”

“그럼 Mr. Kim, 너는 뭐해?”

“나는 집에서 이 아이를 봐야 해.”

“말도 안 돼! 소파에 누워서 애나 본다고? 너희 부모님은 알고 계시니? 내가 너희 부모님이었다면 미국에 못 가게 했을 거야!”

“...”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례한 입국 심사원과 대화를 하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런데 어쩌겠나. 여기서 한마디 받아쳤다간 미국 국경을 밟지도 못할 판인데. 우리 둘 다 그냥 멍청하게 웃어 보이곤 미국에 도착했다.      


그게 미국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 이렇게 무례한 사람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6개월 동안 살면서 느낀 점은 미국은 성별을 떠나서 전업으로 아이를 보는 일이 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단순히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엄마와 아빠에게 ‘휴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제도적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학원 지원 때부터 나를 많이 챙겨주던 한 여직원은 분명 내가 입국하기 직전에 아기를 낳으러 휴가 중이라고 연락을 받았는데, 입학식에서 나를 보고 환히 인사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유급 휴가와 무급 휴가를 모으고 모아 2달가량을 쉬고 일터로 돌아왔다고 했다. 꽤나 명성 높은 사립대학교 교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출산을 위해 주어진 유급 휴가는 1주일, 그 외의 휴가는 1년에 배정된 모든 휴가를 모으고 모아 쉬어야 했다고 한다.


윗집의 터키에서 온 아기 엄마는 작년 12월에 아기를 낳았고, 6개월째 전업 엄마로 살고 있다. 그녀는 나에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고, 이제 26살인 그녀는 일하고 싶지만, 아이를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도 알아보고 있지만, 쉽지 않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엄마들의 사정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과감하게 1년 동안의 육아휴직을 결정했고, 아기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미국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던 나는 그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억세게 운이 좋은, 어쩌다 한 번 볼 수 있는 그런 엄마였다.


전업아빠의 삶은 어떤가. 이건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겠지만, 아내의 측면에서 본 전업아빠의 삶은 헤쳐나가야 할 관문이 많아 보인다.     

아빠가 안아주는 걸 너무 좋아하는 아들. 요즘은 아빠를 쫓아다니며 안아달라고 운다.

한국에서 남편은 가정에 매우 충실한 아빠이자 남편이었다. 야근해야 할 때도 저녁에 잠깐이라도 들어와 아기 목욕은 본인이 하려고 노력했고, 둘 다 맞벌이 부부였기 때문에 집안일도 누가 많이 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같이 해왔다. 그런 남편이었지만, 나 없이 남편이 오로지 혼자 아이를 본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혼자 본 몇 번도 내가 약속이 있어 잠깐 다녀올 때였기 때문에 주말에 몇 시간 정도였다. 이곳의 삶은 그때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일주일에 최소 4번은 아침부터 학교에 갔고, 어떤 날은 아기가 잠들 시간이 되어서야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미국에서 주양육자는 내가 아닌 아빠였다.


미국에 오기 전 남편은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전업아빠로서 내가 없을 때 아기를 열심히 돌보면서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다. 남편은 육아를 온전히 하는 일상 속에 틈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이 짜놓은 아름답고 보기 좋은 하루 일과표는 거의 매일 다른 방식으로 어그러졌다. 어떤 날은 아기가 낮잠을 짧게 자서 망가지고, 어떤 날은 이유식을 먹다가 전부 집어 던져서 아빠의 에너지가 너무 빨리 소진되고, 가끔은 완벽하게 계획대로 움직이기도 했다. 남편은 아기가 부모의 노력과 무관하게 자기 마음대로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남편은 종종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짜증을 내곤 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성실한 남편은 육아하면서 영어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남편은 자신이 생각했던 삶과 현실을 타협하는데 두 달 가까이 걸렸다. 오전에는 어떻게든 버텨보려 아이와 함께 영아 수영교실, 도서관 영아 활동에 참석했고, 내가 집에 있는 주말에 시간을 내서 사설 어학원을 다니거나 공부를 하러 갔다. 

남편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던 도서관 Babytime. 종종 만나던 Dann의 아빠와 손녀를 봐주시던 할머니랑 인사를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만났던 육아휴직을 했던 아빠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보면서 남는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 어떤 아빠는 주식을 할 거라고 했고, 어떤 아빠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도대체 육아를 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당연히 가능하다는 꿈같은 환상은 누가 심어준 것일까?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 깨달은 사실은 대부분의 남자들은 태어나서 육아휴직을 쓰는 순간까지 육아휴직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들은 살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출산과 육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대학에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이 회사가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인지, 육아휴직은 잘되는지, 내가 원하는 일을 위해 내 삶에서 결혼이나 출산의 비중을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리고 육아가 자신을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 일인지 주위에 엄마가 된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지만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유학시험에 합격하고 나서야 본인의 인생에 육아휴직이라는 선택지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육아'보다는 '휴직'에 더 집중해서 회사에서 너무 지쳤던 몸과 마음을 달랠 자신을 위한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고 했다.


지금의 남편은 전업아빠에 완전히 적응했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내가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그 부담이 많이 줄어든 덕분이기도 하지만, 뭔가 주부의 스멜이 느껴지는 꼼꼼한 손놀림에 감탄하곤 한다. 6개월 동안 남편이 겪어온 길을 보면서 남편이 지금 이 삶을 위해 얼마나 용기 냈는지 생각한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남자도 육아휴직을 해야 한다.’라는 무책임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용기내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는 어떤 아빠에게 우리가 만났던 입국심사관처럼 그들의 용기를 깎아내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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