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을 찾는 법
20대 초반의 나는 정말이지 끝도 없이 가난했다. 배운 건 있어서 어떻게든 먹고 살 수는 있었으니, 다른 누군가가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때의 삶은 그때의 나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돈이 모이기는커녕 기회만 된다면 잠을 줄여서라도 일을 더 해야 했다. 그렇게 번 돈은 다시 생활비로 나갔고, 회사 점심시간에는 제대로 된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벌벌 떨려서 삼각김밥 같은 걸로 때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커피 한 잔 같은 건 나에게 엄청난 사치였다. 어디 커피뿐인가? 돈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돈 없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었다. 6000원짜리 김치찌개, 4100원짜리 아메리카노, 2000원 남짓의 교통비, 고작 그 정도가 내가 누리고 싶은 전부였고 바로 그 사실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 시절의 가장 큰 행복은 1-2년에 한 번씩 사던 가방이었다. 강남역 지하상가 2번 출구 앞에 있는 가게에서는 가방을 만 원에 살 수 있었다. 비록 그 가방들은 특별히 예쁘지도, 튼튼하지도 않았지만 그 만 원의 사치가 위로가 되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곳에서 백팩이며, 크로스백이며 여러 가지 스타일의 가방을 살 수 있었으니. 이런 가방 쇼핑이 없었으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달랠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20대였고, 내 주변 친구들도 그러했다. 변화하는 트렌드와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 때문에 눈 돌아가는 그런 보통의 여자애들이었다.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나도 인절미 빙수랑 엽기 떡볶이가 먹어보고 싶었다. 스키니진이나 스틸레토 힐 같은 것도 입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사치품이었고 나는 스키니진을 살까 말까 하는 고민조차 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만 원짜리 가방도 마음먹고 사야 하는데 누구는 몇 십만 원 하는 지갑을 해외에서 주문한다든지, 나는 밥 한 끼 사 먹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자꾸 여행을 청한다든지 하는 그런 것들에 일일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사람은 결국 자기 수준에 맞춰 살 수밖에 없는 건데 만 원짜리 가방이 내 수준이었다. 그래서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누가 뭐라 하든 가만히 있었다. 옆에서 일부러 내 가난을 들쑤시지만 않는다면 엿으로 금반지를 바꿔 먹든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런 말을 들었다. “기민이는 뭔가 옷을 기민이스럽게 입어!” - 초등학생 때 살이 엄청 쪄서 그때 산 옷이 성인이 돼서까지도 사이즈가 맞았는데 그게 누군가에게는 “기민이스러움”으로, 그러니까 내가 애써 유행을 외면하고 고집스럽게 입어왔던 옛날 옷들이 누군가에게는 개성으로 보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어떤 면에서도 개성이 있는 편은 아니다. 창의력이나 센스도 딱히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 들었던 한 마디는 내 마음 깊은 곳 조금이라도 남아있었을 스키니진에 대한 미련을 씻어내었다.
참 신기하다. 입고 싶은데 못 입는 게 아니라, 입을 수 있는데 안 입는 거라고 생각만 바꿔도 나는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었으리라. 월급을 주지않는 회사에다 경험 쌓으려고 일 하는 거 아니라고 따질 수 있었고, 돈이 없어서 1년 동안 다니던 독서모임을 그만두었을 때도 하나도 주눅들 거 없었다. 돈 안 주는 회사에 잘 보일 필요 없었고, 책은 혼자서도 잘 읽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나는 옷을 기민이스럽게 입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스키니진을 살 수 있을 만큼은 되었지만 그래도 안 입는다. 스키니진은 나처럼 종아리가 두꺼운 사람에게는 잘 어울리는 옷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커피도 잘 안 마시고 원래 떡볶이도 안 좋아하는데 그게 그렇게도 부러웠다.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었다. 이제는 유행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다. 하이힐은 발 아파서 못 신겠고, 베스트셀러는 너무 진부하고, 여행은 피곤하다. 요즘은 뭐가 유행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대충 카디건이나 하나 걸치고 나와서 카페에서 책이나 읽는다. 그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