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엄마 집에서 고속버스와 광역버스를 갈아타고 또 언덕을 걸어 오르며 장장 7시간에 걸쳐 네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는 순간까지 난 사실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못했어,
어렸을 때 주말이면 꼭 챙겨봤던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에선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땅에 묻기 직전에 살려달라며 관을 두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거든, 나는 혹시 네가 그렇게 살아와 있지는 않을까 이 모든 게 몰래카메라는 아닐까 혹은 너무 생생한 꿈은 아닐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내려왔을 때, 자식을 잃은 듯한 부모의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혹시 저분이 네 아버지는 아니겠지, 이 모든 게 사실은 아니겠지.. 생각하며 네 번호가 보내온 부고 문자에 적힌 곳으로 걸어가니 그 앞 전광판에 지금보다 몇 년은 앳되 보이는 네가 입을 앙 다문 채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어, 방년 31세. 故 라는 문구가 네 이름 앞에 붙은 채로. 이 모든 게 사실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어했던 난 눈물이 났고 날 발견하고선 '잘 왔다' 말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선배의 모습에 결국 큰 소리 내어 울어 버렸지.
오는 내내 네 죽음을 이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하러 간다는 생각에 너무나 두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막상 오고 보니 오길 잘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 맑고 순수한 너와 그런 네가 사랑했던 나, 그리고 그런 너를 사랑한 나, 우리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망했는데..
여기선 모두 널 그리워해, 네가 얼마나 순수한 사람이었는지 항상 솔직하고 사랑 표현에 거침없는 사람이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네가 날 얼마나 사랑했는지 우리 관계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도..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네게 수 없이 얘기를 들었던 너와 닮은 고모 네가 유년기를 같이 보낸 민영 언니, 수지 작은 아빠, 민형이 형 그리고 네 절친 종규와 축구팀 형들, 초중고 친구들과 전 직장 동료들까지 모두 널 보고 싶어 하고 진심으로 네가 평안하게 잠들길 기도하고 또 애도하더라, 그 사람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위안으로 삼는 내 모습을 보며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
네가 나에게 얘기해줬던 어린 왕자의 '길들여진다는 의미', 네 아버지가 사업을 실패한 얘기, 다리를 다쳐 축구를 그만둔 얘기,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던 전 여자 친구 얘기까지.. 시간이 지나 내가 잊어버리면 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여기선 이미 누군가가 알고 있고, 그 이야기를 함께 하며 네 존재를 그리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고 행복하더라..
바보처럼 엄마를 붙 잡고 울면서 네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며, 여기 사람들이 너의 복을 비는 동안 난 내 아픔에만 괴로워했다는 것이 너에게 너무도 미안하더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러더라 넌 정말 멋진 아들이었고 동생이었다고, 어른들조차도 널 닮고 싶고 배우고 싶은 점이 너무 많은 사랑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 표현에 주위 사람들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나만 너를 그렇게 기억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행복해..
네 폰에는 아직 우리 사진이 있고, 너와 내가 주고받은 메시지가 남아있다는 것.. 네 프로필 사진은 영원히 내가 찍어준 사진으로 남아있을 것이란 것,. 너 같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 짧지만 내 곁에 다가와, 나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려주고 갔다는 것, 정말 너무 행복해..
초재일, 벌써 7일이래.
하루 중 눈을 뜨는 시간이 가장 힘들어, 네 카톡이 와 있지 않는 아침은 며칠이 더 지나야 적응이 될까.. 바쁘게 일 할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가도, 7시 퇴근시간에 전철역까지 가는 길은 다시 가슴이 먹먹해져와. 너에게 항상 전화를 걸곤 했는데 얼마가 더 지나야 아무 생각 없이 전철역 까지 갈 수 있을까?
오늘은 모자 사장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
"한 발자국 세상을 대면한 그대의 하루를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만, 모쪼록 힘내시기를..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사랑받았기에 영원한 추억의 별 하나 가질 수 있게 되었음을 옅은 미소로 끄덕이는 네가 되기를.. 세상은 알 수 없는 그대 별이 가슴속에 조용히 빛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