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연길 Oct 25. 2024

육아휴직 36주 차 : 우리는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나

아빠 육아 : 240930-241006


 동네에서 술집을 열었다. 동네도 사랑하고 술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언젠간 했었어야 하는 수순 혹은 과업.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동네 카페에서 진행하는 문화공유행사의 일환이었다. 프로그램 이름은 ‘질문 있는 술집’. 매일매일 다른 호스트가 각자의 질문을 동네에 던지는 재미있는 기획이다. 주제는 연애부터 기후까지 다양했다. 나도 용기를 내서 껴달라고 말했다. 나도 세상에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우리 동네니까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건강한 인사이트와 따뜻한 마음을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동네에 아이를 데려가도 되는 술집이 있다면?”


 사심 가득한 이 질문은 처음엔 순전히 개인적인 니즈에서 출발했다. 육아를 하다 보면 맥주 한 잔이 굴뚝같은 날이 많다. 특히 고된 시간을 보낸 후에 선선한 밤공기를 맞이했을 때, 저녁까지 먹인 아이와 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요즘 같은 날씨의 계절에는 더욱 간절하다. 하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물론 가면 간다. 그래도 왠지 눈치가 보인다.


“도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질문은 사실 이 문장에 더 가깝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눈치를 본다. 그것이 본인 마음의 소리가 불러온 양심에 기인한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부분 내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타인의 시선 때문인 경우가 많다. 체면과 염치라는 단어가 통제와 제약을 예쁘게 포장까지 한다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아이가 술집에서 떠들면 어떡하지, 시끄럽게 해서 다른 사람이 싫으면 어떡하지, 입장 자체는 괜찮나, 우리 부부를 어떤 시선으로 볼까, 아이를 술집에 데려온 개념 없는 사람으로 보려나. 절대 알 수 없는 타인의 마음을 추측하고 결론 내린다. 심지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다. 그런 마음들이 행동을 꽤 주저하게 만든다.


 쓸데없는 감정과 걱정들도 어떻게 보면 잉여다. 웨이스트다. 그런 생각들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적어도 아이를 키우면서 견지하고 싶은 자세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지고 싶었다. 아이는 다 안다. 내가 불안해하며 자신을 돌보고 있는지, 당당하게 사회에 맞서고 있는지. 예의범절은 철저히 지켜야 하겠지만 과도한 눈치를 보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내가 너무 그렇게 살았기도 했다. 아쉬운 마음도 한 스푼 반영되었다.


 이태원클래스도 정주행 하지 못한 나로서는 큰 도전이었다. 일주일 전부터 다른 건 손에도 안 잡혔다. 핑계 삼아 흑백요리사만 엄청 봤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여운이 남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다. 한 가지 반전이 있다면 요리는 반차 쓰고 온 아내가 다 했다. 나는 아이와 접객을 했고, 떠벌거리기고 다니기에 바빴다. 고마워해도 시원찮을 판에 투닥거렸던 것도 같다.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늘 뒷수습을 해주는 아내에게 꼭 미안하다는 말도 남기고 싶다.


 특별히 성황리에 끝난 행사는 (당연히) 아니었다만 평범한 주민으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일단 내가 이런 걸 나서서 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와주신 분들이 감사했다. 그들의 마음에도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의 씨앗이 심어졌다면 그걸로 기쁠 것 같다. 아이의 계좌로 받은 수익금은 그녀의 성장에 잘 활용할 계획이다. 사교육 같은 거에 쓰지 않고 무언가 스스로 질문할 수 있는 경험에 투자할 순 없을지. 나도 질문 있는 술집 덕분에 꼬리를 무는 다른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제로 웨이스트 행사였다. 일회용품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240930(월) : 여독이 있어서 왠지 피곤하다. 그래도 새로산 잠바를 입어서 신났다. 하원하고 아빠와 버스를 타고 연희동에 갔다. 엄마와 '마우디'에서 만나서 식사를 하고 집에 왔다.

241001(화) : 엄마아빠 모두 쉬는 날이다. 오전에 다같이 집청소를 하다가 오후엔 신연중학교 잔디밭에서 뛰어놀았다. 좋은 날씨다.

241002(수) : 이모가 동네로 놀러왔다. '베지스'에서 밥을 먹고, '보틀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셨다. 

241003(목) : 오늘도 엄마아빠가 쉰다. '사러가'에 가서 장을 보고 '동경' 커피숍에 들렀다가 집에 왔다. 근데 콧물이 나네?

241004(금) : 병원에 갔다가 등원했다. 집에와서 낮잠을 자고 '보틀라운지'로 출발. 아빠가 연 행사에 같이 참여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둘리네와 손님을 맞이하며 재밌게 놀았다. 

241005(토) : 아침일찍 제주도로 출발! 신발을 택시에 두고 내려서 제주도에서 'ABC마트'부터 갔다. 보말칼국수를 먹고 '앙데팡당(아빠가 자꾸 궁뎅이팡팡이라고 해서 웃겼다)' 카페에 가서 그림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시다가 낮잠을 잤다. 고산 농협에 가서 같이 장을 보고 숙소에 체크인 했다. 엄마아빠가 연애때 갔던 '별돈별'에 가서 고기를 먹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241006(일) : 아침에 동네 산책을 했다. '배호배호'에서 커피를 마시고 빈티지 모자를 샀다. 너무 잘 어울려 마음에 든다. '고산도들집' 구경을 하고 '원앤온리'에 가서 밥을 먹으며 산방산을 봤다. 집에오는 비행기에서 잠들었다.







분리되지 말고 모두 어울렸으면 좋겠다




이전 11화 육아휴직 35주 차 : n개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