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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Oct 23. 2024

육아휴직 35주 차 : n개의 행복

아빠 육아 : 240923-240929




집과 돈이 없어도 내가 만약에 하루하루 내가 열정을 쏟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하루하루 이유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신이 나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은 것 같아. 그게 노후대비 같아 (키키,「유튜브 채널 재지마인드, 1년 동안 유튜브 하며 찾은 결론 편」, 2024. 9. 22)




 요즘 애청하는 브이로그 유튜버가 한 말이다. 물질의 척도로 행복을 줄 세우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공감했다. 물론 물질은 죄가 없다. 생활을 돕는 소중한 존재다. 우리가 너무 물질만 생각하니까 문제다. 모두가 같은 목표를 갖고 산다는 건 생각해 보면 끔찍했다. 드디어 n명의 사람이 n개의 행복을 얘기하는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나는 내 행복을 무엇이라 정의할 것이며, 아이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


 여기서 솔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나 던져보고 싶다. 아이가 집과 돈이 없어도 내 마음이 정녕 괜찮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무언가에 몰두하며 보냈을 때였다. 보통 무용한 일들을 했다. 그냥 그런 걸 따질 생각도 안 했다. 그렇다고 그 경험에 기반한 조언, 이를테면 ‘학업보다 다른 것들이 재밌으면 자퇴해도 된다’, ‘직업은 돈벌이를 전혀 고려하지 말고 흥미와 보람만 생각해 봐라’라는 말을 아이에게 해줄 용기가 있을까. 까놓고 말하자면 못한다. 나도 은연중에 아이가 다른 이들보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게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타인을 염두에 둔 물질의 척도로 심리적 기반을 설정하고 있다. 모순이다.


 이번 주 지역사회 교육토론회에서 들었던 강의 내용이 떠올랐다. 교수님은 행복을 함양하기 위한 영혼의 3대 요소로 자율성(Autonomy), 유능성(Competence), 관계성(Relatedness)을 꼽았다. ‘유능성’이라는 단어에 특히 눈이 갔다. 나에게는 ‘인정욕구’라고 읽혔다. 나아가 우리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과연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지 되짚어보았다. 타인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일까. 우리는 본인에 대한 평가를 남에게 맡겨 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행복과 멀어진다. 시선이 밖으로만 향한다면 자율성도 갖기 어렵고, 목적 없이 편안한 관계도 만들 수 없는 걸로 이어진다.


 어렵다. 만약 아이가 해외봉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려나. 진심으로 박수 쳐줄 수 있을까. 반대하기도 힘들겠지만 찬성하는 건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돕고는 싶다.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선물해주고 싶다.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길 바란다. 하기 싫은 걸 참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본인이 설정한 기준 내에서 영민하게 컨트롤해 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의 버팀목이 살면서 맞이할 불안들을 줄여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내 욕심이려나.


 결국은 나한테 하는 이야기다. 나부터나 잘하자. 이제 40대, 인생의 나머지 반으로 돌입하고 있다고 느끼지만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런 고민을 시작해서 다행이다. 휴직이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물질적 이득을 떠나서 하는 행동들이 무조건 무용하지 않다. 본인이 판단할 수 있다.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시간은 한정적이다.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일들로 일상을 채워나가고 싶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나도 행복할 수 있다. 아이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다.






240923(월) : 비행기는 불편했지만 엄마아빠에게 기대서 푹자고 아침을 맞았다. 공항에서 출근하는 엄마를 배웅하고 아빠와 톳김밥을 먹고 집으로 갔다. 낮잠을 3시간 잤다. 추워진 한국에서 밤산책을 하다가 가을 모기에 볼을 물려버렸다. 자기 전에 엄마가 보고싶어 울었다.

240924(화) : 여독 때문인지 아빠와 늦잠을 자고 등원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친구가 반가웠다. 하원을 하고선 까루나에 갔다가 폭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저녁을 먹고 아빠와 아파트 산책을 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하루만에 본 엄마가 반가웠다.

240925(수) : 오랜만에 아빠와 걸으며 등원했다. 날씨가 선선해졌다. 하원하고선 아빠와 버스를 타고 엄마직장에 놀러갔다. 가는 길에 덴마크 핸드볼 선수단을 만나서 아저씨에게 선물을 받았다. 엄마가 퇴근이 늦어져 아빠와 급하게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240926(목) : 예쁘게 옷을 입고 등원하는 길이 예뻤다. 하원하고 아빠가 여름에 자주갔다던 'nook409'에서 데이트를 했다. 퇴근한 엄마와 '훗닭훗닭'에서 만나 전기구이 통닭을 같이 먹었다.

240927(금) : 엄마가 치즈까까를 구워주시고 출근했다. 귀여운 강아지모양 치즈까까와 편지를 보고 웃었다. 하원하고 아빠와 신촌으로 가서 엄마를 만났다. 맘이 급한 아빠와 준비를 하며 투닥거렸는데 아빠가 미안해했다. 팝업스토어에 가서 '파체리토 타코'를 먹고 집에 돌아왔다.

240928(토) : 늦잠을 자서 삿뽀로에 못갈뻔 했다. 첫번째 식사는 '카니본가'에서 게찜. 오후에는 삿포로 팩토리를 비롯한 구경을 하고 스스키노 역에서 저녁으로 스프카레도 먹었다.

240929(일) : 아침에 동네 산책을 하고 동네 슈퍼에서 장을 봤다. 요즘 우리 가족의 여행 루틴이다. 삿포로 공원에서 놀다가 점심밥으로 징기즈칸도 먹고 귀국했다. 인천공항에서 월요일에 아빠와 먹었던 톳김밥을 셋이서 먹었다.







올해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여행을 자주다녔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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