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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Oct 18. 2024

육아휴직 34주 차 : 부모가 되면 효자가 된다니

아빠 육아 : 240916-240922



 ‘부모가 되면 효자가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거 구라다. 내 모습이 주장의 근거다. 난 예전도 지금도 꾸준히 효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육아를 하면서 부모님이 떠오를 때가 많다. 잠든 아이를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들이 오버랩된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하루종일 전전긍긍했던 날이 있었다. 지금 내 걱정스러운 얼굴은 엄마아빠의 젊은 시절 표정과 닮아있을까 하는 상념에 빠진 적이 있다.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감정이 스며든다. 가족 생각은 역시 슬픔을 동반한다.


 기대감. 내가 일평생 싸워온 단어다. 나는 잘해야만 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잘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강박은 열심히 살아가는 명분이 되어주기도 했다. 어쩔땐 경쟁을 즐기기도 했던 것 같다만, 끝은 늘 괴로웠다. 사실 나는 별로 이기고 싶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눈에 불을 켜고 이득을 보는 선택만 하곤 했다. 그게 안전했다. 나중엔 그래서 늘 불만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그러니까 손해보더라도 내가 하면 좋은 것들-을 일부러 멀리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아들이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어긋난 효심이다.


 그런데 요즘,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생각보다 부모님은 나에게 기대감이 없다는 다소 허무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순전 내 착각이었다. 내 보상심리가 만들어낸 심리적 허상이었다. 대화가 부족했다. 이럴 수가,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단어가 나의 심리적 허약함의 핑계에 불과했다니. 심지어 부모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견뎌주시고 계셨다고 한다. 내 마음의 답답함을 묵묵히 받아주고 싶었던 것이다. 부끄러웠다. 그 것이 부모님 앞이라 다행이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이도 분명 살면서 자신을 괴롭히는 단어들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타파해야만 극복할 수 있는 고난이 있을 것이다. 해결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나도 결국은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은조를 믿기 때문이다. 샌드백이 되어줄 용의도 있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울적해졌다. 부모님은 내 곁에 언제까지 있어주실 수 있을까. 시간이 유한함을 느낀다. 나는 효도를 앞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런 말 하게 될 줄 몰랐지만, 뭔가 효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추석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나에게 한 말이다. 당연히 아이가 효도의 목적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친가와 외가의 가족들이 은조를 예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기분이 들 법도 했다. 부모님께 조금 더 잘해드리고 싶다. 대화를 늘려보고 싶다. 그들의 생각을 묻고 싶다.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틈틈이 기록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더 오랜기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또 그들에게 초조한 마음을 기대본다.






240916(월) : 추석이라 전주에 가는 날, 아침부터 기차를 놓칠까 봐 아빠 엄마랑 뛰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놀았다.

240917(화) : 외갓집 가는 날. 파주로 가는 기차를 아침에 탔다. 아빠 엄마와 뚜레쥬르 일반 의자에 앉아서 할아버지를 기다렸다. 남양주 이모집에 와서 친척오빠들이랑 재밌게 놀았다.

240918(수) : 아침 일찍 일어나 발로 아빠를 깨웠다. 하나둘씩 일어난 다른 가족들과 놀면서 아침을 보냈다. 이모가 준비해 놓은 전복을 아침저녁으로 먹고 오빠들과 놀이터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낮잠을 푹 자면서 집으로 왔다. 

240919(목) : 아침에 병원을 갔다가 기분 좋게 등원했다. 여행 가는 걸 알고 있어 신난다. 하원길에 온 엄마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낮잠을 자며 공항에 갔다. 공항에서 밥도 먹고 여유 있게 놀다가 비행기를 탔다. 밤늦게 푸꾸옥 호텔에 와서 엄마아빠와 누워 일찍 잠에 들었다.

240920(금) : 아침에 일찍 일어나 조식뷔페에 갔다. 바다를 구경하고 수영장에서 실컷 놀았다. 오후에는 다른 호텔로 이동했다. 이곳도 수영장 천국. 현지식당에서 밥 먹고 발마사지를 받는 엄마아빠 품에 안겨 잠을 잤다.

240921(토) : 아침에 아빠랑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고 놀았다. 수영장에선 큰 백조 튜브를 빌렸던 것이 재밌었다. 비가 왔지만 운치 있었다. 저녁엔 야시장을 걸었다. 사람들에게 열심히 인사를 했다.

240922(일) : 집에 가는 것이 아쉬워 또 수영을 또 했다. 선셋을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는 길이 피곤했다.




요즘 태어나 처음 보는 아버지의 환한 표정들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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