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909-240915
지금은 오후 세 시다. 하원 한 시간 전이다. 하루 중 마음이 가장 초조해지는 시각이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간 걸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우왕좌왕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졸린 것은 덤이다.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는다. 적당히 포기하자. 하려던 걸 어차피 다 못하게 될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삼십 분 간 일기라도 써보자고 다짐한다. 몇 시간 동안 부여잡고 있었던 글이 갑자기 잘 써진다. 역시 마감이 만병통치약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아멜리노통브의 소설에서 이웃집 남자는 항상 오후 네 시 정각에 찾아왔지만, 대한민국 어린이집에선 아무도 네시 정각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기에 더 조급해진다. 반년 간 경험한 바로는 세시 사십 분부터 오십 분 사이 하원이 국룰이다. 그때쯤 몰린다. 어린이집 현관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지금 한 시간이 아니라 삼십 분 정도밖에 안 남았다. 나는 이걸 ‘네 시가 네 시가 아니야 현상’이라 명명하고 ‘눈치의 시간’이라고 해석한다.
첫 번째 눈치가 보이는 대상은 선생님이다. 네 시 칼하원은 왠지 죄송하다. 학부모는 결국 을이다. 몇 번 부딪힌 이후로 꼬리를 내린 지 오래다. 교우 부모님, 그러니까 딸 친구의 엄마아빠에게도 눈치가 보인다. 너무 빨리 데려가면 뭔가 불문율을 위반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안되는데 육아 적극성을 서로의 모습을 통해 확인한다는 점도 여간 신경 쓰이는 포인트.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아이 눈치를 보기에 네 시 전에 간다. 이제는 아침에 분리하면서 울진 않지만 새초롬해지는 모습이 꼭 참는 것 같아 보여 마음이 다른 각도로 시리다. 오늘도 살짝 토라진듯했던 그 눈빛이 하루종일 마음에 남아있었다.
회사를 안 다니니 눈치 볼 사람이 당분간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어린이집에 데려가서 아이의 표정부터 살핀다. 생각보다 괜찮다. 처음엔 나를 거들떠보지 않기도 한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급하게 떠든다. 잘 놀았나 생각하면서 안고 밖으로 나온다. 그제야 안심하듯 푹 안겨 손을 빤다.
'참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억장이 무너진다. 반가움보단 미안함을 담아 꾹 안는다. 이 살냄새가 사실 몇 시간 동안 그리웠다.
미리 싸 온 아이짐을 메고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7018번을 타고 경복궁역으로 간다. 서촌도 걷고, 북촌에도 가보고, 국립현대미술관에도 들어간다. 비어있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사람처럼 시간을 눌러 담는다. 아이와 같이 가기엔 눈치가 보이는 힙한 카페보다 고즈넉한 길거리가 요즘엔 더 좋다. 실컷 걷다가 퇴근한 아내를 만나서 셋이서 돌아오는 귀갓길도 사랑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가족의 시간. 조금도 뺏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시간, 나누고 공유하고 향유하는 시간, 살면서 이런 시간의 비중을 늘려야 함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그렇게 먹었던 눈칫밥을 소화한다.
240909(월) : 늦잠을 잤다. 아마도 여독 때문이려나. 어린이집에 늦게 갔다. 등원할 때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하원하고선 노래를 부르며 아빠와 집으로 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엄마를 마중하고 집에 와서 다 같이 파스타를 먹었다.
240910(화) : 오랜만에 걸어서 등원했다. 오후에는 '까루나'에 다녀왔다. 책과 책에 나오는 주인공을 빚은 도자기를 선물로 받았다. 아빠가 감복했다.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아빠와 아파트를 네 바퀴나 돌았다. 까루나에서 받아온 책을 한참 읽고 잤다 (책 : 누가 내 머리 위에 똥 쌌어?)
240911(수) : 아빠랑 다른 길로 등원했다. 날씨가 제법 선선해졌다. 저녁밥을 먹고 또 가족모두 아파트 산책을 했다.
240912(목) : 어린이집에서 추석행사가 있던 날, 한복을 입고 아빠와 사진을 찍었다. 하원길에는 아빠와 우산을 쓰고 걸어왔다. 집에 와서 우비로 갈아입고 장화를 신었다. 아빠와 재활용쓰레기를 버리러 나가서 웅덩이를 찾아다녔다. 첨벙첨벙 놀았다.
240913(금) : 아빠가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아빠를 안아주고 토닥여주었다. 말도 잘 들었다.
240914(토) : 아침에 일어나 '래인'에 가서 엄마아빠와 시간을 보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청와대길을 걷고 북촌에서 놀았다. 열린 송현광장 잔디밭에서는 뛰어다니기도 했다.
240915(일) : 콧물이 심상치 않아 병원 탐방을 했다. 다행히 공휴일에 진료하는 좋은 병원을 찾았다. 집에 와선 엄마와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홍제폭포'에서 산책도 잠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