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 : 240902-240908
올해 자주 아내의 회사 근처로 간다. 초반엔 은조랑 갔다. 사실 구원 받으러 갔었다. 풀타임 육아가 두려웠던 때였다. 그렇게 종종 저녁 외식을 했다. 격무를 끝내고 퇴근한 아내를 바로 육아에 참여시킨 셈이다. 요즘엔 점심시간에 나 혼자 을지로에 찾아간다. 아내의 회사가 가까워지기도 했거니와 나도 슬슬 여유가 생겼으며 심지어 심심해졌기 때문이다. 같이 점심을 먹으며 밀렸던 이야기를 한다. 어린이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정말 마음 편히 식사를 한다.
커피까지 마시면 좋겠다만 그럴 시간까진 없다. 식당에서 나와선 괜히 애매한 거리를 유지하며 걷는다. 회사 근처라 왠지 모르게 손을 잡기가 좀 그렇다. 점심시간은 자유라지만 누가 볼까 괜히 눈치가 보인다. 약간 남사스럽기도 하다. 얘기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스킨십을 하게 되면 큰일 난 것처럼 놀란다. 그럴 땐 헛기침을 하면서 뒷짐을 진다. 몰래 연애라도 하는 사람들 같다. 신윤복의 그림 같기도 하다. 회사에서 좀 떨어진 으슥한 곳으로 가 인사를 나눈다.
그러고선 아내가 걸어가는 걸 조금 보다가 온다. 뒷모습을 오랜만에 본다. 결혼하고선 특히 등을 볼 일이 드물었다. 아이가 우리와 함께한 이후론 더 그렇다. 시간을 들여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본 적은 있으려나. 아마 싸우고 째려볼 때 말곤 없었을 것이다. 문득 회사로 걸어 들어가는 그 어깨가 안쓰러웠다. 생각해 보면 저 이도 워킹맘으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 여유 없는 마음 어쩌면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러면서도 나는 올해 아내에게 이해를 강요한 적이 많다. 전담육아하는 것이 벼슬도 아닐 텐데, 외롭다는 핑계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징징대곤 했다.
측은지심, 가족 사이에도 꼭 필요한 단어다. 서로 안쓰러워하며 뭐라도 챙겨주지 않으면 버티기가 힘든 시기, 그러니까 지금 같은 때에 특히 필요한 덕목이다. 아내랑 십 년 넘게 지내면서 단 한 가지 남은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하나만 더 인심을 쓰자면 달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점이다. 나의 장점과 단점이 아내와 정반대라서 서로 못난 점을 커버 쳐줄 수 있다. 물론 상대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전제했을때 가능하다.
잘 알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가장 짜증을 내는 대상은 가족인 경우가 많다는 걸 자각한 후로 결심했다. 밖에서 하는 친절 이상으로 가족들에게 더 친절하자. (장항준 멘트 요약, 「tvN 아주 사적인 동남아 2회, 2023. 4. 3)
일 년 간 육아휴직을 하면서 되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쌓인다. 처음엔 생색 좀 내고 싶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남편 잘 없지 않아?’라는 오만 섞인 생각도 솔직히 깔려있었다. 힘든 시절을 함께 관통하다 보니 알겠다. 상대가 정말 진심을 다해 분투하고 있음이 느껴질 때 그런 철없는 정신머리는 한없이 부끄러워진다는 사실. 오늘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느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아이를 같이 재우다가도 서로 손이 닿곤 하는데, 십중팔구 은조의 발인 줄 알고 만진 경우다. 오늘은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그 손을 놓지 않아 보겠다. 바통터치만 하려말고 잡아보겠다. 그 손에 사양지심도 담아보겠다.
240902(월) : 하원을 하고선 아빠와 버스를 타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엄마가 퇴근하고 합류하여 '황가네 칼국수'에서 만둣국과 칼국수를 먹고 집에 왔다. 시티투어버스를 탄 외국인들에게 인사를 한참 했다.
240903(화) : 아빠와 유모차를 타고 등원했다. 아빠가 사 온 '미크'의 티셔츠를 입어보았다.
240904(수) : 요즘엔 계속 유모차를 타고 등하원을 한다. 날씨가 계속 덥다. 유모차가 이제 편하기도 하다.
240905(목) : 아빠와 하원을 하고 육아종합지원센터에 갔다. 장난감을 반납하고 놀았다. 이상한 오빠들이 좀 많았다.
240906(금) : 하원을 하고 아빠와 대림미술관에 가서 지드래곤의 전시를 봤다. 엄마가 대림미술관으로 데리러 와서 같이 귀가했다.
240907(토) : 아침 일찍 제주도에 갔다. '자매국수'에서 아기국수를 먹고 평대로 갔다. 평대 '화수목 카페'에서 라온이를 만났고, 근처 해변에 가서 해수욕을 즐겼다. 저녁엔 '민경이네 우럭튀김'에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240908(일) : 순두부찌개집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해변에서 놀았다. 모래사장에 혼자 있는 아기 꽃게가 가여웠다. '순이바치'로 가서 갈치구이를 먹고, 해안가 드라이브를 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비행기부터 계속 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