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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Nov 27. 2024

육아휴직 42주 차 : 준비보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아빠 육아 : 241111-241117



팀장과 약속을 잡아야 한다. 한 달 전엔 복직원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면담이라는 절차가 필요하다. “종종 놀러 올게요” 작년 말 휴직에 들어가면서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처럼 한 말이었다. 십 개월여간 한 번도 안 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강남 근처에도 안 갔다. 십여 년간 매일 출근하던 건물과 철저히 분리된 삶을 살았다. 괜히 어설프게 발 걸치지 않았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괜찮아졌다. 철저히 나로서 살았다. 자투리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썼다. 이외의 걱정은 내일이나 내일모레 하자는 생각으로 살아봤다. 아이를 기르며 스스로도 돌보던 시간이었다. 일기 쓰길 잘했다.





 자신의 이름을 다시 찾은 이들을 그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맹렬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 것은 이름을 갖고 조직을 떠나 독립하라는 메시지가 아닌 조직에서도 열심히 한다면 자기 이름을 드높일 수 있다는 선언으로서, 조직의 생명력을 더욱 건강하게 지속시킬 방법이 됩니다.(송길영,『시대예보 : 호명사회 』, 2024)





유난히 개인과 조직의 관계를 다룬 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읽은 한 해였다. 어쩌면 시대가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내외적으로 담금질해야 할 때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올해 처음으로 자연인인 개인으로 지내보았다. 안 해보던 걸 해봤다. 시대가 명분이 되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는 복직이 계속 두려웠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복잡한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몸이 피곤한 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 투입시간에 비례할 업무 퍼포먼스, 그에 따라 돌아오는 수치심과 자괴감에 대한 내성, 여유가 부족하면 찾아오는 부부싸움, 상상력은 나를 불안으로 이끌었다.


스킬을 써야 할 때다. 면담을 앞두고 다시 한번 다짐하는 차원으로 적어본다. 올해 나는 정신 수양을 통해 여러 극복 방법들을 터득했다. 그 첫 번째, 일단 홀리하게 시작한다. 감사함으로 중무장하는 방법이다. 휴직급여를 안 준다고 입이 삐죽 나올 때가 아니다. 기다려준 회사를 고마워해야 한다. 휴직을 했다고 해서 책상이 사라지진 않았다. 동료들의 이해도 감사하다. 노동자의 권리 등 떠들고 다닌 명분은 많았지만, 그거 다 멋쩍어서 그랬다. 다시 한번 상황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다. 복직하면 화장실도 두 번갈 거 한 번 가면서 열심히 일할 거다. 내가 좋은 케이스가 되어 육아휴직이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첫 번째 방법이 버거워지면 유체이탈을 해보기로 한다. 아예 상황과 환경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버리는 기술이다. 일명 메타버스 씽킹. 아침에 일어나서 세상에 로그인한 내 행위가 중요할 뿐, 그날 어느 맵에서 플레이할지는 크게 괘념치 않는 방식이다. 의외로 행위에 철저히 초점을 맞추면 고난이 흐려질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신인류를 ‘어디에 존재하든 간에 완전히 현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고 정의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아까 상상했던 걱정들은 허상일 뿐이다. 직접 겪어보고 판단해 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마지막 방법, 일류처럼 웃으며 존버하는 것. 아이에게 배운 방법이기도 하다. 결국 견디기가 중요하다. 마음의 준비는 사실 필요 없다. 오히려 각오가 필요하다. 풍랑을 보고 웃어넘길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하고 싶은 거 다 못한다. 황금밸런스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법이다. 수평계의 수은눈금을 계속 체크하며 자세를 수정해나가야 한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시간의 틈사이로 걱정이 낄 새 없이 가족과의 웃음만 스며들면 좋겠다. 시간은 애초에 구매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유할 수 없으니 아낄 필요도 없다.





241111(월) : 하원하고 ‘신기한 놀이터’에 갔다. 날씨가 좋다. 무서워서 망설였지만 아빠와 긴 미끄럼틀을 탔다.

 241112(화) : 하원하고 ‘까루나’ 포틀럭파티, ‘신기한 놀이터’에서 모래놀이. 저녁식사 후 엄마아빠와 서대문도서관에 가서 책반납을 할겸 산책을 하고 왔다.

241113(수) : 하원을 하고 ‘신기한 놀이터’에 가서 모래놀이를 했다. 다 놀고나서 아빠가 아빠 양말을 신겨줬다.

241114(목) : 하원을 하고 미용실에서 앞머리를 잘랐다. 어쩌나. 나는 더 귀여워져버렸다.

241115(금) : 오늘도 모래놀이를 했다. 아빠가 겨울이 오기전에 최대한 해야한다고 했다. 집에와서 귤을 까먹고 있는데, 근데 콧물이 조금 나온다. 이건 또 어쩌나.

241116(토) : 담이 언니네와 서대문 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연희동 칼국수’에서 저심을 먹고 ‘엔트러사이트’에서 티타임까지 가지고 헤어졌다.

241117(일) : 공휴일에 여는 병원에 갔다가 ‘서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외삼촌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척들이 내 성장에 모두들 놀랐다.





모래놀이를 하고나서 젖은 양말을 벋고 아빠 양말을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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