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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 연길 Dec 04. 2024

육아휴직 43주 차 : 아이는 얼마나 자랐을까

아빠 육아 : 241118-241124


 일 년 간 나의 본업은 육아, 애석하게도 성과지표나 피드백은 없다. 자체 점검만 있을 뿐이다. 아이는 일 년 동안 잘 자랐을까. 사진첩 버튼을 누르니 수천 장이다. 어쩐지 핸드폰이 버벅거린다 싶었다. 추억행 급행열차를 한 바퀴 타고오니 벌써 자정을 넘겼다. 씨씨티비로 자고 있는 어린 딸을 봤다. 새삼 많이 컸다고 느껴진다. 괜스레 슬프다. 정말 기이한 기분이다. 많이들 이야기하는 감정인데 설명하기가 어렵다. 요즘의 우리 아이는 정말 눈치까지 빤해졌다. 즐거운 분위기와 냉랭한 기류까지 모두 감지한다.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신체나 운동능력은 청출어람 수준이다. 아이가 풀파워로 달리면 나는 따라잡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올해 봄에만 하더라도 서대문자연사박물관 4층 어린이 도서관에 크게 펼쳐진 매트에서 걸음마 연습을 했었다. 둘리에게 물려준 노란색 츄리닝 상하의를 입고 임전무퇴 정신으로 걸었다. 넘어져도 웃으며 다시 일어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엽고 뭉클했다. 동영상으로 찍어 “열정 동기부여가”라는 멘트와 함께SNS에 올렸다. 물론 적극적인 몸짓과 활동량은 여전히 나에게 귀감이 되는 중이다.


 인지력도 일취월장으로 발달했다.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본인도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처음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들었을 때특히 기뻐한다.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격려하며 안아준다.등원을 하면서 신발을 고를 때 (나와는 전혀 다른 취향이지만) 꽤 맥락 있는 선택을 한다. 아직 스트레스를 받거나 피곤해지면 왼손의 두 번째, 세 번째 손가락을 빤다. 여기에 아빠의 귀까지 만지고 싶어지면 졸린 것이다. 나름의 마음정화 방법 같아 말리진 않고 있다. 손을 최대한 자주 씻겨주고 있다.


 일 년 동안 아이가 좌절했던 순간들도 떠오른다. 그래도 옆에서 지켜봐 줄 수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등원하면서 인사할 때 쓸쓸해지는 눈빛이 어디에 흐르지 않게 내 마음에 담아놨다. 어떤 날의 아이는 억지로 웃어보려고 하기도 했다. 그런 날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입술이 찢어져 세브란스 병원에 갔던 날도 생각난다. 의사파업인지 뭔지 때문에 마취 없이 입술을 꿰맬 때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힘들었던 날들엔 어김없이 꼭 안고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 상처는 점점 옅어져 갔고, 우리의 마음도 단단해졌다. 딸은 항상 씩씩하게 나아갔다. 이제는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언니오빠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프렌들리한 어린이가 되었다. 내 딸이지만 멋있다.


 알고 있다. 시련이 있어야 성장이 있다는 것도, 다치고 넘어져봐야 조심할 수 있다는 것도, 눈치가 생겨야 유리한 상황을 감지할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다. 다만 못 본 척하고 기다리는 게 어렵다. 마음만 같아서는 딸이 평생 해맑기만 했으면 한다. 그녀를 위한 길은 아니기에 눈을 질끈 감을 뿐이다. 그래서 늘 잘못한 것도 없이 미안하다. 아파하면속이 썩는다. 부모 마음이 그렇다. 너무 빨리 크지 않았으면 한다. 무엇이든 어떻게든 잘해주고 싶으니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귀중한 시절이 오늘도 지나가고 있다. 내일은 아이가 일어나자마자 사랑한다고 말해줘야겠다.





241118(월) :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차를 타고 등원했다. 하원길에는 갑자기 ‘까루나’에 가고싶어졌다. 이유는 ‘좋아서’. 우유라는 강아지를 만났는데 무섭지만 궁금했다. 집에 올때는 아빠를 꼭 안고 왔다.

241119(화) : 하원을 하고, 아빠와 동네 서점과 문방구에 다녀왔다. 사고싶은 것이 많아졌다. 아빠는 숫자공부 책을 고르면서 별모양의 장난감도 같이 사줬다.

241120(수) : 아침에 병원을 갔다가 등원했다. 콧물이 그쳐간다.

241121(목) : 엄마 생일이다. 아침부터 온힘을 다해 축하노래를 불렀다. 저녁에는 엄마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케이크 촛불도 같이 불었다.

241122(금) : 아빠랑 같이 그림을 그렸다. 오무라이스 잼잼 팬아트에 응모할 거라고 그랬다. 아빠는 이런걸 할 때마다 당첨될 것 같다는 확신을 강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241123(토) : 인천행. 아빠 육아일기모임에 같이 갔다가 ‘네스트 호텔’에 가서 우은언니 가족을 만났다.

241124(일) : 호텔에서 맛있게 조식을 먹고 우은이언니와 신나게 여기저기를 뛰어놀다가 낮잠을 자면서 집으로 왔다.






어느덧 혼자서 귤을 까먹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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