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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혜현 Dec 23. 2023

크리스마스에는 따뜻함을

<패밀리 맨>, <대시 앤 릴리>, <터미널>

크리스마스 이브엔 모두가 따뜻한 뭔가를 원한다.


왕가위 감독의 <2046>에 나오는 대사다. 크리스마스 이브엔, 크리스마스엔 모두가 따뜻한 뭔가를 원한다. 


크리스마스 영화로 빠지지 않고 추천되는 <러브 액추얼리>, <나홀로 집에>…. 말고, 따뜻한 성탄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넷플릭스 시리즈를 추천한다.



패밀리 맨


잭은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크리스마스에도 쉼 없이 일을 한다. 돈과 명예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준으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끌어올렸다.


© <패밀리 맨> 2000 브렛 래트너


그러나 우연한 계기로, 모르는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눈 떠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오래전 사랑했던 케이트, 딸과 강아지, 장인과 장모, 이웃의 친구… 갑자기 도시 외곽의 평범한 주택에서 평범한 가족을 이루며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 당장 어제까지 누리던 좋은 차와 좋은 집, 심지어 직업까지 다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13년 전, 잭은 연인 케이트와 약속을 했다. 돌아오리라고, 그러나 돌아가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며 달리느라. 자신의 성공적인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느라. 그 약속은 기억 속 어딘가에 자리했지만 곧 지우다시피 했고 마침내 없었던 것처럼 존재감을 잃었다.


<패밀리 맨>은 우리가 진정으로 가치를 두어야 할 곳에 가치를 두고 있는지 묻는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같은 날을 당신은 어떻게 보내고 있느냐 같은. 그가 새롭게 눈을 뜬 삶은 케이트와의 약속을 지켰을 때의 삶이다. 그는 가족과 따뜻한 한때를 보내면서 자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배워간다.


영화에서 또 한 번의 선택에 기로에 놓였을 때, 잭은 대답한다. “I would choose us(난 우리를 선택할 거야).”



대시 앤 릴리


대시는 서점에서 빨간 노트를 발견한다. 노트엔 릴리가 남긴 암호 메시지와 힌트가 있었고, 메시지를 알아낸 대시는 호기심으로 노트에 답장을 적게 된다. 얘네 노트로 썸탄대요.


© <대시 앤 릴리> 2020 넷플릭스


로맨스 드라마이긴 하지만, 10대가 주인공이니만큼 성장 서사가 돋보인다. 영드 <스킨스>(2007)에서 스드 <엘리트들>(2018)로 이어진 하이틴 드라마 특유의 퇴폐적이거나 선정적인 자극을 배반한다. 이들이 그러한 자극들로 10대들의 결핍에 따른 성장을 조명했다면, <대시 앤 릴리>는 그렇지 않고서도, 어쩌면 너무 순진해 보일 수도 있는 ‘진심 어린 사랑’으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진심 어린 사랑에는 진심 어린 대화가 있다. 게다가 그 진심 어린 대화를 이어가게 하는 건 본인들의 노력과 변화 때문이라고 말한다.


빨간 노트를 매개한 이들의 대화는 대시에게는 관계의 진정성을, 릴리에게는 관계의 유연함을 알려준다. 대시와 릴리는 언뜻 서로 달라 보이지만, '무언가의 결핍'이라는 공통의 속성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결핍을 서로의 영향으로 채워나간다.


대시가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만 어쩐지 솔직하지 못하다면, 세상 속에서의 릴리는 부자연스럽지만 스스로에겐 솔직하다. 그럼에도 이 차이는 소통이라는 단 하나의 문제를 가리키면서, 연결의 매개체인 빨간 노트를 통해 대시의 ‘자기만 아는' 면모와 릴리가 깨부수지 못하는 '나만의 세상'을 자연스럽게 연결해낸다. 노트에 글을 쓴다는 것, 즉 너에게 말하기 위해 나에게 말하는 소통의 과정은  나의 세계를 점차 우리의 세계로 확장한다.


이 두 10대의 풋풋한 로맨스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대시와 릴리의 성장과 사랑을 보는 동안 따뜻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터미널


<터미널>은 크리스마스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는 영화다. 다만 영화의 엔딩까지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엔딩으로 끌고 왔던 영화의 정서로 충만해진다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터미널> 2004 스티븐 스필버그


자국인 크라코지아가 쿠데타로 인해 일시적 유령 국가가 되면서 빅터는 공항 터미널에서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다. 사실 무시하고 나가려면 나갈 수 있지만 그는 ‘기다린다’.


“You say you are waiting for something and I say to you, ‘Yes, yes, we all waits.’(당신은 내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지, 그리고 나는, 맞아 우린 모두 기다려.)” - 빅터

"What are you waiting for?(당신은 뭘 기다려?)" - 아멜리아

"You. I wait for you.(당신. 당신을 기다려.)"  - 빅터


영화에서 빅터는 많은 것을 기다린다. 공항에서 나갈 날도, 공항에서 만난 당신도, 그리고 땅콩 캔을 위해서도. 그리고 마침내, 그는 내내 갖고 있던 땅콩 캔을 들고 택시에 탄다.


땅콩 캔으로 추억하는 누군가, 그 장소,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눈 내리는 뉴욕의 거리. 기다림에 관한 생의 지도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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