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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Sep 27. 2023

2호점을 위한 1호점 창업

트라이얼 배치에서 배우는 작게 시작하는 법

트라이얼 배치

제약회사는 신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Trial 배치를 만든다. Trial은 시도라는 뜻이고, 배치는 제조 단위를 일컫는다. Trial 목적은 분명하다. 완제품을 만들어내기 전에 시험적으로 제조하여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그렇기에 Trial 배치는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다. 만약 완제품이 알약 100개를 만드는 일이라면, 트라이얼 공정에선 30개만 만든다.

 당연하지만 트라이얼 배치에선 실패가 잦다. 한 번에 성공하는 확률은 적다. 주성분 함량이 떨어질 때도 있고, 생각했던 대로 모양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완제품 생산에 앞서 Trial은 최소 3번은 이뤄진다. 경우에 따라선 더 한다. 많은 시도 끝에 연구소, 마케팅, 생산 등 모든 이해 관계자가 OK하면 그때서야 실제 판매하는 사이즈로 키운다. 제약 산업에선 그것을 Scale-up이라고 한다.


트라이얼 파티룸?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도 앞서 "우리는 잘 안 될 거야"라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오히려 반대가 더 많다. "지금 어떤 사업이 유행이라는데,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거나, 혹은 "지금은 아무도 못 보는 좋은 사업이 있는데, 내가 하면 잘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다. 거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본인 사업 하겠다는 누구라도 지녀야 할 자존이자 긍지다. 그 정도도 없이 남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일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신을 우려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동안 생산 기획자로서 본 바 트라이얼 배치는 첫 턴에 성공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연구소 사람들이 어디 뭐 시시하거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까. 만무하다. 약사, 의사에 가방끈도 길고 경험도 풍부하다. 그런 유능한 사람들조차 완제품 생산이란 Goal을 위해서 여러 번 작은 단위로 트라이얼 하고, 다시 피드백하고, 그것을 또 실험한다. 나에겐 완제 의약품 생산을 위한 일련의 트라이얼 과정이,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교과서처럼 다가왔다.


2호점을 위한 1호점

객관성이라는 안경을 쓴다면 우리의 첫 파티룸 사업은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보다 "안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더 많다. 우리는 창업 경험도 없다. 연구소 사람들만큼 똑똑하지도 않다. 파티룸과 렌털스튜디오를 뺀질나게 다녀보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0-100까지 만들어본 경험도 없거니와, 세금, 인테리어, 마케팅 등 모르는 게 천지다.

 

그렇기에 우리는 파티룸 사업에 트라이얼 프로세스를 적용해보고자 했다. 작게 생산 후 Scale-up 하는 방식. 뭔가 있는 것처럼 써놨지만 한 마디로 모든 결정을 보수적으로 했다.

첫 번째로 돈을 아꼈다. 5,000만 원짜리 사업을 1번 하는 것보다 1,000만 원짜리 사업을 5번 하는 게 더 낫다고 믿었다.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자금을 융통했다.

 두 번째로 퇴사하지 않았다. 이 또한 우리가 생각한 "작게 하기"방향과 일치한다. 금액이 아닌, 리스크적인 측면에서 작게 하기. 만약 전업으로 달라붙었다면 더 빨리, 더 섬세한 공간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긍정회로다.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을 확률이 좋았을 때보다도 훨씬 높다. 실제로 오픈하고 두 번째 달은 손님이 거의 없었다. 매출만으로는 월세를 낼 수도 없었는데, 그럴 때 월급이 없었다면 무게감이 달랐을 거다.  


같은 매출을 적은 비용으로

트라이얼 배치는 시도와 피드백을 계속해서 담금질하는 과정이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더 낫고, 말할 것도 없이 두 번째 보단 세 번째가 더 목표에 가까워진다.

 만약 1호점을 만들었을 때 겪은 시행착오가 100이면, 장담컨대 2호점을 만들 때는 70 정도의 난관만 해결하면 된다. 그러니 계산기 두드리면 간단하다. 우리는 무조건 2호점을 열어야 한다.

 만약 0-100의 시행착오로 만든 1호점에서 100만 원을 만드는 법을 깨달았다고 가정하자.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2호점에서 0-70의 시행착오와 비용으로 100만 원을 만들어 내면 매출 100만 원은 같지만, 뒤에 숨겨진 숫자가 다르다. 기대 이익은 동일한데, 비용과 LOSS는 줄어들 테니.   

 우리는 1호점을 만들면서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우는 중이다. 2호점 때도, 3호점 때도 그렇겠지. 우리 꿈이 파티룸 대부는 아니다. 그럴 사이즈도 못 되고. 그것보단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종류의 사업과 일을 찾는 것을 목표한다. 거기에 가까워질 때까지 끝없이 작은 단위로 사업 경험을 쌓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투입 비용을 작게 작게 해야만 실험을 지속할 수 있다.  


오해하면 안 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게, 트라이얼이라고 1호점을 계획하고 만드는 일을 설렁설렁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기획부터 시작해서 임장, 철거, 인테리어, 운영까지 매 순간 모든 결정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경험의 실패지, 능력의 실패는 아니다. 그 경험치는 계속해서 쌓아가고 있다. 만약 그렇게 만든 1호점이 궁금하다면, 예약해서 직접 보러 오시면 된다.   


그래서 2호점은?

우리는 겁도 없이 1호점을 오픈하면서, 바로 2호점 오픈 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사업자 통장에 특정 금액에 도달하면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아직은 거리가 먼 목표다. 당장 평일 하루하루 예약이 귀하다. 그럼에도 2호점과 3호점, 그리고 더 큰 일을 벌려 보는 날을 막연한 꿈처럼 생각하진 않는다.


어서빨리 두 번째 트라이얼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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