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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Oct 01. 2023

사업에 절차 씌우기

SOP로 보는 프로세스의 중요성

나는 SOP라는 단어를 군대에서 처음 들었다. 군대 안에는 정말 무수한 규칙이 있다. 그걸 다 기록해 둔 걸 SOP라고 불렀다. 군대 SOP엔 총의 사거리부터, 상황별 기동 해야 되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 신병일 땐 SOP 때문에 고생 좀 했다. 모르는 게 천지다. 선임들은 언제라도 갑자기 SOP를 물어서 모르면 얼차려를 줬다. SOP가 부조리를 위해서 선임들에게 쥐어준 무기처럼 느껴졌다. 모쪼록 그게 내 SOP란 단어의 첫인상이다. 좋을 리 없다. SOP가 무슨 줄임말인지 조차도 몰랐다. 


업무 표준 운영 절차

SOP는 Standard operating procedure의 약자로, 표준 운영 절차라고 번역한다. 전역하면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SOP를 입사한 첫날 다시 만났다. 다만 여기에는 총의 유효사거리 같은 정보는 없었다. 모른다고 얼차려를 주는 선임도 없었다. 얼차려 보다 더 무서운 일탈 관리와 재발 방지 보고서가 있긴 했다만.  

 제약 산업은 엄격한 관리와 통제 아래에서 약이 제조된다. 그렇지 않았을 때 발생 가능한 문제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의도를 가졌던 그렇지 않든 혹여라도 약이 잘못 만들어지면 그 피해는 온전히 환자의 몫이다.  


그렇기에 제약회사에는 여러 종류의 SOP가 있다. 모든 업무가 표준화된 셈이다. 내용도 꼼꼼히 기술됐다. 만약 철수가 아파서 자리를 비우더라도 누구라도 그 SOP를 보면 철수가 했던 똑같은 퍼포먼스가 나올 수 있게 적혀있다. 약에 대한 제조 공정 SOP뿐만 아니라, 작업장 출입 시 SOP, 일탈관리 SOP, 심지어 SOP 작성에 대한 SOP도 있다. 메타 SOP다. 


SOP 잘 지키면 뭐가 좋은데?

SOP를 잘 따른다고 떡 하나 더 먹지 않는다. SOP대로 한다고 참신한 결과물을 만들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SOP란 것의 특성이 반복할 수 있는 작업만 기록될 수 있을 테니까. 매번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가져야 하는 일이나 창의적인 행위는 SOP로 남겨질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제약회사는 창의성보단 말 잘 듣는 수동성이 더 요구받는 곳이다. 

 SOP는 실수를 막는다. 축구로 예를 들자면 공격수보단 수비수에 가까운 일이다. 제대로 기록돼 있는 SOP는 누락을 막고, 인적 과오를 막는다. 이는 소위 말하는 업무가 빵꾸가 나는 일을 방지한다. 그렇기에 SOP는 잘 적혀 있어야 한다. 모호하게 기술돼 있으면 치명적이다. SOP가 올바르게 관리되지 못하는 것도 치명적인 문제다. 아무나 SOP를 수정하거나 삭제하면 안 되기에 권한 관리도 중요하다. 

 당연하게 생산기획 업무도 SOP로 기술돼 있다. 물론 모든 업무가 다 적혀 있지는 않다. 그렇게 적어낼 수도 없다. 계획을 한다는 일에는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업무는 SOP형태로 표준화 돼있다. 내가 퇴사를 하더라도 누구라고 그 SOP를 보면 감을 잡을 수는 있다.


파티룸 SOP

나는 우리 파티룸 운영에도 SOP프로세스를 덧입히고 싶었다. 파티룸 운영 시 발생하는 업무를 표준화하는 거다. 다만 우리가 어디 감사를 받는 건 아니라 별도의 문서를 만들지는 않는다. 그저 협업하는 노션 툴에 간단한 양식으로 작성했다.  

 우리는 실제로 SOP형태로 업무를 처리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첫 번째로 당연히 누락을 방지할 수 있었고, 두 번째로 반복되는 일은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파티룸 예약 관리 SOP

파티룸 예약 관리 SOP를 예로 들겠다. 공간 임대업에서 예약을 잘 관리하는 건 중요하다. 그것이 누락되거나, 겹치기라도 하면 큰 문제다. 물론 우리 파티룸은 아직 겹치는 실수를 할 만큼 예약자가 많지 않아서 섣부른 걱정이긴 하다. 각설하고, 파티룸 예약 관리는 사람이 들어와서 나가는 거까지 총 5개의 스텝으로 나눌 수 있다. 그 5개를 쭉 도표화해두고 각 각 해야 할 일들을 적어 놓았다. 5가지 스텝은 아래와 같다.


1) 예약 확정

예약이 들어오면, 예약을 확정한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는 것처럼 당연한 말로 들리겠지만 결고 작은 업무가 아니다.   

 우리 파티룸은 네이버 플레이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아워플레이스, 스페이스클라우드에 입점해 있다. 플랫폼 외에도 지인이 예약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인스타그램 DM을 통해서도 예약을 문의받는다. 혹은 우리가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 주고, 블로그 후기를 협찬받는 손님도 있다. 예약이 들어오는 형태가 다양하다. 만약 초반에 이걸 잘 카테고리화해두지 않으면 어떤 손님인지 길을 잃을 수도 또 있다. 어떤 경로로든 일단 예약이 들어오면, 예약이 확정됐음을 문자로 바로 고지한다. 문자 내용은 템플릿이 있다. 이름과, 예약 날짜만 변경해서 전달한다.


2) 캘린더 등록

예약 확정 문자를 보냈다면 이번에는 캘린더에 내용을 반영한다. 즉각적으로 기입해야 한다. 미뤘다가 까먹고 누락되면 큰 불상사다. 캘린더는 예약 한 건에 일정을 두 개 만든다. 한 개는 모든 사람에게 오픈돼 있는 스튜디오 캘린더다. 그곳에 예약한 시간과 이름을 기입한다. 그 캘린더를 통해 다른 사람도 그 시간대를 피해서 예약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동업자와 나만 볼 수 있는 캘린더다. 거기에 동일한 일정을 만든다. 그리고 간략한 예약자 정보를 기입한다. Contact정보, 유입된 채널, 따로 요청한 내용은 있는지, 문의사항, 사용 목적, 인원 정보, 특이사항을 적는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찾기 쉽다. 그리고 예약일 24시간 전 알람이 팝업 되게 걸어둔다. 


3) 이용 전날 안내 메세지 

예약자가 이용하기 전날이 되면, 미리 걸어둔 24시간 전 알람이 핸드폰에 뜬다. 그러면 그때 다시 한번 예약 관련한 문자를 보낸다. 자세한 사용 안내서와, 스튜디오 비밀번호, 그리고 이용 시 주의사항을 적어둔다. 


4) 퇴실 30분 전

손님이 입실 후 퇴실할 시간이 다가오면 나가기 30분 전에 미리 문자로 퇴실 시간을 리마인더 보낸다. 문자를 보내고 안 보내고 차이가 크다. 퇴실 시간을 훨씬 잘 지켜준다. 또한 퇴실 시 간단한 정리정돈을 부탁한다는 문구를 넣는다. 

 이건 정말 며느리도 안 알려주는 비법인데, 여기서만 써본다. 이 문구 하나는 왕복 1시간을 벌어준다. 우리 파티룸은 무인으로 운영한다. 무인 운영의 핵심은 얼마나 그 사업체에 덜 가느냐이다. 발걸음을 줄이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으면 제일 좋다. 때문에 만약 의자가 널브러져 있거나 지저분한 상태면 한 시간을 들여서 방문한 뒤 정돈해야 한다. 다만 퇴실 30분 전에 문자를 하나 보냄으로써 이 문제를 손님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한다면 나는 큰 시간을 버는 셈이다. 


5) 리뷰 요청

손님 퇴실 후 다음날 점심시간 근처에 문자로 간단한 리뷰를 요청한다. 위에 모든 행위들이 그랬듯, 문자를 보내는 것과 안 보내는 것은 리뷰 작성률에서 확연한 차이를 나타낸다. 솔직히, 써 달라고 안 보내면 안 쓰는 손님이 대다수다. 이와달리 꽤 괜찮은 경험을 하고 간 손님이라면 리뷰 요청글을 보냈을 때 80% 이상은 긍정적인 리뷰를 남긴다. 


이렇게 하면 한 손님이 예약부터 시작해서 퇴실해서 리뷰로 전환할 때까지 한 개의 SOP가 완성되는 셈이다. 예약 관리 SOP 외에도 몇 개의 업무들을 SOP의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 가령, 회계 장부는 ~익월 10일까지 마감하기로 한 것, 마케팅할 때 어떤 사람들을 타겟으로, 어떻게 하는지와 관련해서도. 아직 실수를 할 만큼 손님이 없었는지는 몰라도, 그동안 SOP안에서 우리가 만든 프로세스대로 업무를 하면서 누락이나 문제가 생겼던 적은 없다. 


장인과, 프랜차이즈의 차이

장인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서 숙련된 기술자다. 음식 장인도 있고, 가구 장인도 있다. 나는 장인이 가진 노하우도 SOP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발칙한 생각을 한다. 물론 상당한 기술과 노하우를 필요하겠지만, 절차만 복제할 수 있다면 장인을 여러 명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어쩌면 프랜차이즈라는 개념이 거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파티룸을 1호점 창업에서 그치고 싶지 않다. 2호점, 3호점을 운영하고 싶다. 그리고 이걸 발판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사업에 도전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더더욱 모든 업무를 SOP화 해두는 게 중요하다. 프로세스만 잘 갖춘다면 운영하는 파티룸 수량이 늘어나도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절차 안에서 업무의 수량이 더해지는 거지, 새로운 절차나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임대업 사업을 팩토리 형태처럼 2, 3호점으로 뻗어 나가기 위해선 더더욱 모든 업무를 SOP 화하는 게 내게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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