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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Sep 21. 2023

월급보다 더 빼먹는 법

직장인이여 회사를 CDMO 해라

200년 전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선언을 했다. 마르크스는 실패했다. 그러니 나는 조금 버전 업해서 말하고 싶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회사를 CDMO해라"

CMO는 Contract manufacturing organization의 약자다. 어째 설명이 이해에 방해만 되는 것 같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남에게 돈을 주고 위탁 생산 맡기는 총 행위"를 뜻한다.


CDMO

최근 제약 산업에선 CMO에 D가 추가 됐다. D는 Development의 약자다. CDMO란 위탁생산에 개발을 더하는 과정이다. 단순한 제조, 생산을 넘어 신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 개발, 생산공정, 임상, 상용화 등 일련의 절차에 적극 참여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대표적인 CDMO 비즈니스 회사다. 최근에는 롯데바이오로직스, SK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등 굴지의 대기업이 이 비즈니스에 참여하고 있다.  

 

CDMO의 장점

CDMO는 캐시플로우가 단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모든 제약사는 자체 블록버스터 신약을 꿈꾼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이 확보돼야 한다. CDMO는 기본적으로 CMO비즈니스가 베이스다. 따라서 꼬박꼬박 현금이 잘 들어온다. 풍부한 현금은 신약 실험에 몇 개를 실패하더라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돼준다.

 CDMO의 두 번째 장점은 남의 약을 만들어 주는 일을 통해서 "자체 신약"에 대한 기회를 넘볼 수 있다는 점이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이미 그 분야에서 잘하고 있는 사람을 모방하는 거에서 시작한다. 실제로 1에서 10의 결과를 만드는 일보다, 0에서 1을 만드는 게 더 어려운 경우도 많은데 신약 개발이 꼭 그렇다.

 CDMO는 남의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훔쳐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신약을 우리 공장에서 생산하면 가까이 지켜보면서 실패 과정, 성공 요인, 피드백을 함께 스터디할 수 있다. 그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게 어쩌면 CMO를 통한 수입보다 더 비싼 "경험치 수업료"가 될 수 있다.  


회사를 CDMO 하는 법

나는 회사원도 회사를 CDMO 하는 자세로 대하면 어떨까 싶다. 물론 우리 회장님은 뒷목 잡으시겠지만.


직장인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와, 목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그러니 우리 한 명 한 명은 회사의 CMO업체와 같은 기능을 한다. 금액 규모에 차이만 있을 뿐 개념은 다르지 않다.


내게 있어 "신약 개발"은 작은 사업을 일궈보는 일이었다. 그 첫 번째로 선택한 사업이 파티룸 / 렌털스튜디오다. 만약 안정적인 월급이 없었다면 시도도 못했을 일이다. 모아둔 돈도 적을 테니 지금 사이즈로 시작도 못한다. 틀림없이 꼬박꼬박 꽂히는 월급은 힘이 세다. 사업 초기에 월세를 대신하는 일도 많았다. 마치 CMO비즈니스가 안정적인 캐시플로우인 것처럼 급여는 내게 든든한 총알이었다. 월급이 단순한 금액 이상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정확히 사이드 잡을 시작하면서였다.

 

두 번째로, 어쩌면 이것이 핵심일 텐데, 나는 회사에서 그들이 가진 노하우를 훔치고 싶었다. 회사는 끊임없이 성장을 도모하는 조직이다. 또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새로운 절차와, 규칙을 고민한 곳이다. 각 팀마다 목표는 다르지만 아무튼 그것의 총합은 기업 조직 전체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나는 이 노하우가 아주 군침 돌았다.

 비록 제약회사 생산기획자이지만 내가 회사에서 배운 개념, 직무, 비즈니스 스킬을 내 사업에 적용해보고 싶었다. 마치 신규 CDMO회사가 글로벌 제약사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훔쳐보는 것처럼. 사이드 잡 이후로 월급이 남달랐던 것처럼, 노하우를 훔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업무가 단순한 업무 이상의 것으로 다가왔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회사 생활에도 큰 환기가 됐다.


교집합은 적겠지만

당연하게도 제약회사 생산기획과 파티룸/렌탈스튜디오 비즈니스에는 큰 접점은 없다. 그러나 거의 없는 와중에도 적용할 게 몇 있다. 만약 내 직무보다도 더 B2C에 가까운 직무나, 온라인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과 같은 직무에 종사하면 적용할 수 있는 Tool이 많을 거다. 굳이 파티룸이 아니더라도 본인 직무가 회사 밖에서도 범용성과, 시장성을 가졌다면 나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나만의 신약 개발"에 적용할 수 있다. 실제로 개발자나, 디자인 쪽 지인을 보면 회사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쉽게 회사 밖 수입을 만든다.


나는 내 글이 "하물며 제약/생산기획도 파티룸 창업에 도움 됐다는데, 내 직무라고 눈 씻고 찾아보면 뭐 없겠어?"와 같은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 프로젝트 이름은 사무직 반란기.


노하우 훔쳐오기

회사 대외비, 빼내면 안 되는 공문을 훔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속해있는 조직이 어떻게 목표를 성취하는지, 내 직무는 회사 밖에서 얼마나 적용 가능한지 고민해 보는 일.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을 만드는 일. 나는 이것이 "내가 회사에" 한 명의 CMO 아닌, "내가 회사를" CDMO로 대하는 자세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꼭 사이드잡을 기획하지 않더라도, 이런 자세로 회사를 바라본다면 커리어/회사 생활에 큰 영감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회사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분명 회사에서 월급보다 하나라도 더 버는 게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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