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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실격 Dec 11. 2023

문과, 이과라는 경계를 넘어서

뉴턴의 아틀리에

뉴턴의 아틀리에는 김상욱 교수와 유지원 그래픽디자이너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김상욱 교수는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하다. 또한 얼마 전부터는 알쓸신잡, 이번에는 알쓸인잡에도 출연하시며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유지원 교수는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을 가르친다고 한다. 주요 전공으로는 타이포그래피다. 글꼴, 문체를 다루는 그 타이포그래피 맞다. 쉽게 생각해서 둘을 가장 대척점에 있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끝과 끝은 만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한 분야를 정통한 사람 둘이 만나게 되니 이야기가 더욱 깊어지고, 꽃을 피운다.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가 부제다. 한 개의 대 주제 아래에서 키워드를 골라 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총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장은 관계 맺고 연결된다는 것, 두 번째 장은 현상을 관찰하고 사색하는 마음, 세 번째 장은 인간과 공동체의 탐색, 네 번째 장은 수학적 사고의 구조, 다섯 번째 장은 물질의 세계와 창작이다. 이 대 주에 하위분류에서 "인공지능", "스케일", "이야기", "보다"와 같은 소주제를 꼽아 기술한다.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었던 경험이 있다. 정재승 과학자와 진중권 교수 (혹은 정치 논객, 어쩌면 미학자가) 함께 집필한 "크로스"란 책이다. 아직은 진중권 씨가 최소한 한 쪽 진영에선 지지를 받을 때 발간된 책이다. 당시에도 문과와 이과의 조합이라는 시너지와, 기획이 좋았다. "뉴턴의 아틀리에"를 읽게 된 데에도 영향이 있었다. 다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비교하자면 나는 뉴턴의 아틀리에가 크로스 보다 더 좋은 책이라고 느껴진다.


첫 번째로, 나는 이 책이 예의가 있어서 좋다. 적고 보니 꼰대가 된 기분이다. 다른 게 아니라 상대방 학문에 대한 예의와, 동시에 본인 학문에 대한 겸손을 말한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학부생은 "내가 그거 좀 알지" 싶고, 대학원 생은 "이 정도면 방귀 좀 뀔 수 있겠는데" 싶다가, 박사 과정을 밟으면 "내가 아는 건 하나도 없구나" 싶다는 그런 상태. 

 이 책도 한 분야에서 깊은 연구를 한 학자들이다 보니, 본인 학문에 대한 한계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본인 학문으로는 설명하기 어렵거나 그것만으로는 기술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예술에선 과학을, 과학에선 예술을 불러낸다. 


물리와 미술 모두 질문이 중요하지만, 물리가 답이 있는 질문을 다룬다면 미술은 답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리의 상상이 올바른 답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미술의 상상은 질문 그 자체를 위한 것이다. 
뉴턴의 아틀리에 7page, 김상욱 교수의 글

두 번째로, 이 책이 기획 의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점에서 시너지가 좋았다. 같은 주제를 같고 다른 이야기를 펼치는 것에서 문과와 이과는 이렇게 다르구나를 느낀다. 그리고 그것만큼이나 문과와 이과라고 크게 다르지 않구나도 느끼게 된다. 사실 문, 이과라는 것 자체가 대입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지 않은가. 자연의 세계에선 문과와 이과라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같은 부분에 놀라고, 그리고 다른 부분에 또 놀란다.  

세 번째로 글을 잘 쓴다. 그런데 글을 쓰는 방식도 각자 다르게 잘 쓴다. 김상욱 교수는 과학자의 글이다. 단문이 많다. 그리고 최소한의 것으로만 구성된다. 선은 점과 점을 잇는 최소한의 거리다. 말하자면 그의 글쓰기 방식은 선의 방식이다. 그는 말하기 위해서 딱 필요한 단어들만 골라 쓰고, 단문으로 쓰고, 과장하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유지원 교수는 말이 현학적이다. 이 현학적이라는 게 부정적인 의미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다채롭게 단어를 고른다. 비유도 좋고, 표현도 풍부하다. 특히 목차 중 "언어"에서 유지원 교수가 쓴 글이 유독 좋았다.


한국어 바깥, 영어 바깥, 심지어 언어 바깥으로 나서는 모험은 값지다. 독일어에 한국어가 부딪히는 경계는 내게 싱그러운 바람이 부는 골짜기 같았다. 나는 목적지에 가지 않고 그곳에서 노는 것이 좋았다. 그곳은 극복해야 할 장애의 문턱이 아니라, 그 매혹적인 모호함을 음미하고 유희하는 지역, 우리 인식 너머의 진실에 화들짝 접촉하는 장소였다. 
215page "언어"목차에서 유지원 교수의 글


수준 높은 과학적인 지식을, 혹은 너무 난해한 예술적 교양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각보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여러 잡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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