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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by 청년실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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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는 장류진 작가의 장편 소설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유명한 베스트셀러를 집필하기도 했다. 그녀는 딱 "오늘 서울, 지금 대한민국"등과 같이 동시대를 잘 그려내는 작가이다.


장류진의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는 2021년 창비에서 출간된 작품으로, 암호화폐 열풍이 사회 전반을 휩쓸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은 대기업 ‘마론제과’에 다니는 세 명의 여성 직장인을 중심으로, 이들이 이더리움 투자에 뛰어들며 겪는 내적·외적 변화를 담고 있다. 단순한 투자 성공기를 넘어서, 인물들 간의 관계, 소외감, 미묘한 긴장감이 이야기의 중심축이 된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은상이다. 비정규직 출신으로 정규직이 되었지만 여전히 조직 안에서 경계선에 서 있는 그는, 어느 날 다해에게 조심스럽게 이더리움 투자를 제안한다. 다해는 회의감과 기대감을 지닌 채 은상의 제안을 수용하고, 둘은 함께 암호화폐 시장에 발을 들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더리움은 실제 세계에서처럼 급등하고, 다해는 순식간에 1억 원이 넘는 수익을 얻는다. 은상도 적잖은 수익을 거둔다.


이후, 두 사람은 회계팀의 지송에게도 투자를 권유한다. 하지만 지송은 “너희 정말 한탕주의구나”라는 냉소적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현실적인 감각이 뛰어난 지송은, 그들의 선택이 무모하고 위험해 보였고, 자신은 그런 방식으로 ‘달’에 도달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삶은 단지 신념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지송은 함께 놀러 간 제주도에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결국 은상과 다해의 제안을 수용하고, 뒤늦게 암호화폐 시장에 합류하게 된다.


지송이 암호 화폐에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은 시기 질투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비슷한 계급’이라는 데서 묘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연차, 고만고만한 연봉, 크게 돋보이지 않는 인사고과, 집안의 경제적 배경이나 학력 수준까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될 만큼 닮은 환경 속에서, 이들은 회사생활을 연대하고 견뎠다.


하지만 공감의 조건은 언제나 균형 위에 있을 때만 유효하다. 은상과 다해가 먼저 수익을 얻고 삶에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지송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거리감이 아니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처럼, 지송이 보기에 어제까지 나와 나란히 걷던 은상과 다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달로 멀어지는 모습처럼 보였을 거다. 성공한 연예인을 부러워하지 않는 건, 그들이 애초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송에게 은상과 다해는 ‘같은 줄에 선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앞서감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가 느낀 것은 그들이 빨라졌다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이 뒤처졌다는 감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달까지 가자》는 단순히 ‘투자 이야기’나 ‘한탕주의의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동시대 여성 직장인들의 생존 방식, 관계의 균열,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촉매로 돈이, 정확히는 ‘암호화폐’가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한 가지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그것은 바로 ‘깊이감’의 부족이다. 《달까지 가자》는 세련된 구성과 경쾌한 문체, 또렷한 동 시대성을 무기로 삼지만, 그만큼 오래 곱씹게 되는 감정의 잔향은 적다. 지나치게 현재적인 소재와 상황은 독자로 하여금 즉각적인 공감을 유도하지만, 동시에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가볍게 만든다. 세련됨과 깊이감은 공존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만큼, 이 작품의 트렌디함은 양날의 검처럼 느껴진다.


《달까지 가자》는 3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의 소설로, 빠른 전개와 간결한 문체 덕분에 단숨에 읽힌다. 대화체와 내레이션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암호화폐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불안과 욕망, 그리고 그 틈에 존재하는 인간관계의 미세한 균열을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데 있다.


장류진 작가 특유의 ‘동 시대성’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이 세련된 껍질 안에 조금 더 오래 곱씹을 수 있는 ‘무게’를 담아주길 기대하게 된다. ‘달까지 가자’는 이제 읽었고, 그 너머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추신

이 책은 이더리움을 237만 원에 팔면서 끝난다. 2025년 6월 11일 기준으로 이더리움은 3,797,323이다. 조금 더 빨리 읽고.. 빨리 살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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