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등학교 3년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딱 한 마디가 떠오른다. "절대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간."
힘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만큼의 노력을 또 할 자신이 없을 만큼.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넉넉치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공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복잡한 입시정보를 살펴볼 겨를도 없이, 뭐가 됐든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은 '성적 올리기'였다.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을 아주 극단적으로 할 만큼 나 자신을 밀어붙였다.
"죽을 듯이 열심히 할 건데... 심지어 죽어도 되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결과가 안 좋으면, 하늘을 원망할 거다."
당시의 나는 문과였고 성적은 4~5등급 수준이었다.
그나마 수학은 2~3등급으로 재미를 붙일 수 있었던 과목이 있다는 게 작은 희망이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1) 고1 겨울방학, 손을 들 용기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안 되었기에, 나에게는 EBS와 학교 수업이 전부였다.
특히 겨울방학 보충수업에서 다음 학년의 진도를 나갔을 때가 있었다.
학원에서 미리 배운 친구들은 시시해하는 분위기였지만, 나에게는 반드시 따라잡아야만 했던 내용이었다.
같은 내용이지만 서로 느끼는 무게가 달랐던 내용
선생님이 수업 중간에 "이건 다 알겠지?"라고 했을 때, 교실은 "네~"라는 대답으로 가득 찼다.
나는 그 대답마다 격차가 점점 벌어질 거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망설이다가 결국 손을 들었다.
튀면 안 되고 손들면 안 되고 질문하면 신기하게 쳐다보는 한국 교실 분위기에서 이를 깨뜨린 한 마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설명해 주세요."
그 순간, 교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쟤 뭐야..." 하는 분위기.
하지만 나는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나한테는 이게 생존이었으니까.
다행히 선생님은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진심으로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 개인과외 시간이 되었다.(오히려 좋아?)
돌아보면 그건 정말 사소한 용기였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변화의 시작이었다.
2) 고2 첫 모의고사, 나에게 찾아온 희망
1년 동안 최선을 다했는데도 성적은 그대로였다. 그러다 번아웃이 왔다.
“나는 이렇게 평생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자괴감이 날 괴롭혔다.
그러다 맞이한 고2 첫 모의고사. 여전히 성적은 비슷했다. 하지만 딱 한 과목만 달랐다.
수학 100점.
문과 기준이고 시험범위도 비교적 쉬운 단원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모의고사 100점"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순간이었다.
친구들이 "대단하다"라고 말해줬고,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믿고 싶어졌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는 걸지도 몰라."라는 희망이 처음으로 생겼다.
3) 고3, 자습시간의 요정
고3까지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몰입 → 좌절 → 다시 몰입 → 또다시 좌절]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뿐이었다. 그래서 야간 자율학습(야자)을 3년 내내 했다.
당시에는 야자 선택제라서 참여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우리 반은 더더욱 없었다.
어느 날,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서 1시간이나 지각을 했다.
'큰일 났다. 선생님께 혼나겠네...' 초조한 마음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1등이었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교실 열쇠를 받아왔다. (응..?)
자습 시간에 항상 내가 있었기에 나름 별명이 '야자의 요정'이었다.
3년 동안 계속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내 길이 아니겠구나 마음먹었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보고 실패하면 후회는 덜할 것 같아서.
돌이켜보면 오히려 이 시간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길러준 때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 합격 발표날이 왔다.
친구들은 핸드폰으로 바로 확인했는데, 내 핸드폰은 인터넷이 안 돼서 집에서 보려고 했다.
그런데 나를 아껴주셨던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불러 PC로 직접 확인해 보라고 하셨다.
손이 떨렸다. 마음속으로 빌었다. "신이라는 게 있다면, 내 노력 봤다면, 제발 좀 인정해 달라고.”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결과 보기 버튼을 눌렀다. 몇 초간의 로딩 후 화면이 바뀌었다.
"축하합니다!"
그걸 본 순간, 눈에서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내가 떨어진 줄 알았다고 했다.
같이 노력했던 친구와 서로 부둥켜안고 울면서 단 하나의 사실에 감사했다.
나의 3년이 헛되지 않았구나. 인정받았구나.
남들이 보기엔 대단한 대학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전혀 후회가 없다.
원했던 곳이었고 + 장학금도 있었고 + 거리도 적당했고 + 노력의 결과에 적합한 보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로 똑같이 못 할 것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가능했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안쓰럽기도 하지만,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누구보다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