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회사, 첫 출근, 첫 질문

난 맥북이 싫다

by Cosmo

2020년 12월 28일, 가슴이 두근거린 첫 직장 첫 출근날이다.

사회인이 되었다는 설렘과 긴장, 머릿속에는 내가 멋지게 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거 CTR이 너무 낮은데 왜 그런 걸까요?" (=당시 CTR이 뭔지도 몰랐다. 그냥 주워 들었던 단어였다.)

하지만... 나의 현실 회사생활 첫 질문은 상상한 것과 아주 거리가 멀었다.




1. 맥북과의 전쟁

입사 첫날,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노트북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때 면접 때 나를 뽑아준 그분이 남는 거라며 맥북을 빌려주셨다. "슬랙이나 노션 프로필 같은 거 세팅하시고 저희 플랫폼 둘러보고 계세요"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셨는데 문제는 바로... 나는 맥북을 써본 적이 없었다.


마우스 우클릭을 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마우스도 없고 트랙패드만 덩그러니 있었다. 어떻게 해도 안 돼서 10분 동안 내 인생에서 가장 깊은 고뇌에 빠졌다. 결국 더 이상 못 참고 옆자리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하필 또 그 직원분은 헤드셋을 끼고 계셔서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며

나: "저기요..."
옆자리 직원: "네?"
나: "이거 마우스 우클릭 어떻게 하나요?"
옆자리 직원: (뭐지 이 사람...?)"아.... 손가락 두 개로 누르시면 돼요."


손가락 두 개를 어쩌라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감사합니다'로 대응했다. 다시 나의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그러나 손가락 두 개를 이리저리 시도했지만 계속 안 됐다. 그래서 결국 다시 한번 더...

나: "저기요..."
옆자리 직원: "네?"
나: "손가락 두 개를 어떻게 하나요?"
옆자리 직원: "아... 두 손가락을 같이 트랙패드에 툭 눌러보세요"



2. 한글은 어디 갔니?

겨우 우클릭을 해결하고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두 번째 난관이 등장했다. 내 이름을 노션 프로필에 한글로 쓰라는데, 키보드를 눌러도 영어만 나왔다. 이번에는 스스로 좀 해결해볼까 싶어서 구글에 검색이라도 해보려 했는데 영어밖에 안 써지는데 검색할 방법이 없다. 결국 또다시 옆자리 직원에게 같은 패턴으로...

나: "저기요..."
옆자리 직원: "네?"
나: "이거 한글로는 어떻게 바꾸나요...?"
옆자리 직원: (뭐 이런 사람이 신입으로 왔어...)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내가 군대에서 관심병사를 봤던 표정을 그대로 마주했다. 내가 그때 느낀 좌절감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그렇게 첫 출근 날은 나의 “기술적 무지”를 깨달으며 끝났다.

며칠 뒤에 재무팀장님이 나에게 물으셨다. "노트북 주문할 건데 레노버 쓰실래요? 맥 쓰실래요?"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레노버요."



3. 작고 귀여운 첫 질문의 의미

그날의 질문들은 나에게 너무도 부끄러웠던 순간이지만,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 모든 시작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근데 난 지금도 맥을 안 쓰고 잘 모른다)

우리는 다들 첫 질문에서 시작하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 시절에 취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