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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지언 Jul 20. 2015

천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di Buonarroti, 1475-1564

시스티나 예배당
내 수염은 하늘을 향해있고, 나는 목덜미에 받쳐진 지지대를 느낀다. 
내 붓은 늘 내 머리 위에 있고, 계속해서 물감을 떨어뜨려 바닥에 화사한 문양을 만들어낸다.

세상에서 가장 그리기 힘든 그림은 무엇일까요?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힘이 든다는 의미, 또는 어렵다는 의미는 그 그림을 묘사하거나, 혹은 색의 조합을 이끌어 내거나 창작의 소재를 선택하는 데 있어 고민이 있다는 등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정말로 육체적으로 힘이 드는, 즉 창작 자체가 고된 중노동이 되는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천정화입니다. 


언제나 위태로운 높은 발판 위에 올라가서 천정을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 활동이라기보다는 고문에 가깝지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열중하다 자칫 자신의 신체의 중심을 잃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으며,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는 것 역시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의심이 간다면 지금 당장 단 5분 간만이라도 천정을 향해 고개를 들고 그림을 그리는 시늉을 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허억!! 뒤, 뒷 목에 디스크가!!!)

<천지창조> 中 <아담의 창조>

천정화 중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은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 <천지창조>입니다. 

미켈란젤로의 평생의 역작인 이 그림은 <아담의 창조>로 우리에게 특히나 더 익숙하지요. 

약 4년 6개월간에 걸친 천정화 작업은 르네상스의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에게 디스크와 시력저하 등의 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림 하나 그렸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를 그리기 전 까지 천정화는 그려본 적 없는 화가였는데요, 그는 화가이기 전에 이미 <피에타>와 <다비드>상으로 유명한 조각가였습니다. 


갑작스런 천정화의 주문은 천재 미켈란젤로를 질투하던 브라만테가 당시에 미켈란젤로를 추천한 것이라고 합니다.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천정화를 그려보지 못하였기에, 분명히 실수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명예가  실추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브라만테의 의도와는 반대로 천재에게는 실수가 없었고, 오히려 역사상 세계 최고의 천정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래서 천재란...)


천정화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랐던 미켈란젤로는 하나부터 배워가며 그린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고, 연구자들은 미켈란젤로의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고 숭고한 세월이었다고 평가합니다.

최후의 심판

<천지창조>와 함께 시스티나 예배당에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은 <천지창조> 이후 약 20여 년 후에 그려진 벽화로 세상의 끝에 인간을 심판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림입니다. 


이 위대한 그림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있는데, 원래는 그림에 그려진 사람과 천사의 형상이 올 누드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한 교황이 선정성을 이유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철거하려고 하자, 주변의 수많은 반대와 만류로 인해 누드화로 그려진 인물들에게 전부 약간씩의 천을 덧대어 그리게 하였다는 사실!! 

그래서 천지창조의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부자연스럽게 앞섬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누드화의 앞섬을 덧대어 그리는 화가를 비꼬아 ‘기저귀 화가’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미묘하게 어색한 가림막...
다비드

미켈란젤로는 이렇듯 회화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건축 그리고 시(詩)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만 하라고, 하나만... 이 천재 새ㄲ...)


특히 조각에 있어서 굉장한 천재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걸작으로는 앞에서 말 한 <다비드>와 <피에타>를 들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고 자신은 대리석 안에 갇혀 있는 형상을 그 안에서 끄집어 낼 뿐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대리석 덩어리에서 형태를 잡고 이를 끄집어내기만 하였다기엔 그의 조각은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다비드>의 경우 손과 팔의 힘줄 한 가닥까지 표현해내어 당장이라도 돌팔매질을 할 것 같고, <피에타>의 경우에도 성모 마리아의 옷 주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근육과 힘줄표현이 매우 세부적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대리석 조각으로 이러한 표현을 해 놓은 것은 어지간한 집중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피에타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의미를 가진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명이 아닌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모습을 총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여러 개의 피에타들 중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요즘은 <피에타>라고 하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 중 유일하게 서명이 들어가 있는 <피에타>는 약 40년 전에 자신을 예수라고 칭한 한 사람의 정신병자에 의해 파괴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열다섯 번의 망치 가격을 받은 피에타상은 성모 마리아의 코가 떨어져 나가고 눈꺼풀이 깨지는 등의 손상을 입었지만 지금은 복원되어있는데요. 이 사건 이후로 <피에타>는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서 관람객들과의 사이에 방탄유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미X놈 하나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여러분.)


천재 미켈란젤로는 천정화를 그리며 병을 얻어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고, 살아있는 동안 여러 명의 교황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평생을 걸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와 같은 동시대의 천재들과 항상  비교받으며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15~6세기의 사람들 치고는 드물게 90살 가깝게 장수하였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말들을 살펴보면 창작 활동에 있어 기쁨과 환희에 대한 말보다는 언제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다는 말이 더 많이 보이지만, 이렇게 장수한 것을 보면 그에게 창작 활동은 역시 삶의 큰 기쁨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미켈란젤로 선생님, 아니었다고 하신다면 저는 난감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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