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신입사원 신분이던 나는 팀원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아 식사조차 각자 하는 콩가루 팀에 배정되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업무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리 없었다. 자투리 업무만 받은 데다 그조차도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었고,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한 뒤 입에 거미줄 친 기분으로 퇴근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종일을 보내고 나면, 어딘가를 향해 미친 듯 달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곤 했다. 두 다리가 이끄는 대로 집 앞 안양천을 무작정 달렸다. 오목교에서 출발해 고척돔을 지나 광명을 찍고 오면 왕복 8km였다. 더 답답할 때는 소하리까지 달리기도 했다. 어려서 그런지 왕복 12km가 넘게 달려도 거뜬했다.
별안간 달려가는 사람
최초로 러닝크루에 가입한 것도, 하프 마라톤을 뛴 것도 그 때다. 그 때는 달리는 게 도망치는 것 같았다. 페이스고 뭐고, 다리가 빠질 것 같고 숨이 가빠올 때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숨이 차오르면 잠깐 걷다가, 괜찮아지면 다시 뛰는 일을 반복했다.
오래 달리기보다는 빨리 달리기였고, 건강 유지나 다이어트 등 다른 목적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달렸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내향적인 시기가 아니었을까. 날 때부터 태양을 품고 태어난 나는, 사무실에서 꼭꼭 숨겨둘 수밖에 없던 불기를 달리면서라도 모두 뿜어내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그때의 달리기가 내게 도피를 위한 도구였다면, 무려 5년이 지난 작년, 달리기에 다시 입문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코로나로 인해 찐 살을 빼고 싶었고, 지방을 연소하는 데 30분 이상 오래 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글을 본 것이다.
하지만 코시국 내내 소모되어버린 당시 체력으론 10분조차 연달아 뛸 수 없었고, 그래서 한창 유행하던 ‘런데이’라는 어플과 함께 나의 제 2의 러닝 시대가 시작되었다.
참고로 저는 런데이로부터 협찬을 받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저 처돌이일 뿐..
런데이에는 초보 러너 8주 프로그램이 있다. 1주차에는 1분 뛰고-2분 걷기를 반복하는 30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하고, 차수를 거듭할수록 뛰는 시간을 늘려 간다. 결국 마지막 8주차에는 쉼 없이 30분을 내리 뛸 수 있도록 체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릴 때 한 척추 수술 때문에 폐 크기가 남들 대비 70% 수준이라 처음에는 3분 뛰는 것도 힘들었는데, 8주차 프로그램 마지막 날 나도 모르게 30분을 내리 ‘뛰어버린’ 순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렇듯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체력을 늘려주고, 꾸준히 작은 성취를 쌓아 마지막에는 비교적 큰 성취를 이루게 해 준다는 점이 런데이 초보 러너 프로그램의 힘이다.
서서히 체력과 강도를 늘려가며 프로그램을 진행해 준다는 점 외에도 런데이의 매력은 다양했다. 우선 8주 프로그램을 주차별로 하나씩 클리어하면 어플 내에 가상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데, 나처럼 가시적 성과충에게는 이 ‘도장깨기’의 재미가 또 쏠쏠했다.
온라인 크루 러너들을 친구등록하면, 내가 뛰기 시작할 때 친구들이 응원을 보내고 이 때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리는데 그것도 소소한 재미다.
보라색 버튼을 눌러 친구의 달리기를 응원할 수 있다.
그리고 런데이 어플에는 보이스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진행해 주는 AI 청년이 있는데, 그의 정신 나간 해맑음과 쓸데없이 우렁찬 목소리도 은근히 중독적이었다. 런데이 유저끼리는 그를 ‘런총각’이라고 부르는데, 프로그램 막바지쯤 거의 한계에 달할 때 그의 ‘넌씨눈’스러운 멘트를 들으면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도 은근 헛웃음이 나온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자~알 하셨습니다!” “지금 지구의 사람들 중 절반은 TV를 보며 누워 있습니다!”와 같은 말들을 마치 캘리포니아에서 나고 자란 긍정충만이 낼 수 있는 톤으로 내뱉기 때문이다.
초보 러너 옆의 (넌씨눈) 런총각
러닝화 고르는 법, 바른 자세로 달리는 법, 달릴 때 호흡법 등 초보 러너가 알아야 할 정보들을 희망찬 목소리로 끊임없이 알려주는데, 그런 걸 듣다 보면 어느새 프로그램이 끝나 있다. 물론 그렇게 해서 힘들게 하루 프로그램을 마친 뒤 “수우고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125칼로리를 소모하셨는데요, 이것은 바나나 머핀 1/4조각 정도입니다!” 따위의 말을 들으면 그 해맑은 긍정충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어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런총각의 얄미움은 차치하고라도, 런데이는 나에게 쉼 없이 30분 정도는 거뜬히, 매일도 뛸 수 있는 체력을 선사해주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하게 해 주었다. 8주 프로그램을 통해 아침저녁 공복유산소를 한 결과, 25일동안 5키로를 감량했으며 근력운동을 병행해 바디프로필까지 찍을 수 있었으니까.
작년 가을, 그리고 올 봄 찍은 바디프로필
바프 준비 당시 몸무게 변화 트래킹
그 뒤로 나는 러닝 예찬자이자 런데이 전도사가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혹시 런데이 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진 뒤 모른다, 안 한다는 사람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런데이 칭찬을 한 뒤 그 자리에서 어플 다운로드 + 가입 + 친구추가까지 하도록 독려하곤 했다.
실제로, 단기간에 체지방을 감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복유산소라고 장담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걷기나 빨리 걷기, 인터벌 러닝보다는 천천히라도 30~40분 내리 뛰는게 가장 효과적이다. 그리고 그 30분을 내리 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가장 좋은 친구가 바로 런총각과의 8주 트레이닝(!?)이라 믿는다. 물론 공복유산소는 단기간에 그쳐야 하며, 이후에는 균형 잡힌 식단과 근력운동을 병행해야 하지만.
이번 달 러닝 기록. 거의 매일같이 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왜 달리는가. 요즈음 나는 새벽 달리기에 미쳐 있으며 매일 아침마다 5km씩 뛰고 있다. 한때는 현실 도피를 위해, 또 한때는 다이어트를 위해 달렸지만 지금의 나는 정말 순수하게 좋아서 달린다. 뛰고 싶어서 달린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끊임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머릿속이, 달릴 때는 진공 상태가 된다. 진공 상태가 된 머리로 내 신체의 움직임만을 온전히 느끼며, 보라매공원 트랙 저 너머에 있는 나뭇잎새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달린다. 무리 없는 페이스로.
수많은 런데이의 기록
요새는 런총각의 응원 대신 사운드 짱짱한 일렉트로니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볼륨을 키워 들으면서 달리는데, 어제는 달리다가 Syn Cole의 ‘Miami 82(Avicii Edit)’을 들으면서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눈물이 핑 돌 정도의 행복감을 느꼈다. 풍성한 사운드와 비트가 청각을 싸악 감싸고, 바람은 피부를 시원하게 스치고, 호흡을 통해 들어온 숨이 내 몸을 통과해 나갈 때 복근이 조여지는 그 느낌! 다른 것 아무것도 없이 그냥 내 두 발만으로 대지를 힘차게 디디며 팔을 앞뒤로 흔들며 나아간다는 기분.
딱 이 때쯤이 클라이막스
주변에서는 달리기하러 나갈 때, 공원까지 가는 그 길이 힘들지 않느냐고 많이 묻는다. 또는 달리기 자체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론 힘들다. 가끔은 달리기와의 관계가 애증의 관계라는 생각도 든다. 어느 날은 평소보다 숨이 더 차기도 하고, 평소와 똑같은 거리를 뛰는데도 마지막 1km가 이상하게도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가 하면 가끔은 아침에 뛰었는데도 점심, 저녁에도 또 뛰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있고, 달리기 위해 보라매 공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설렐 때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가 그렇고 연애가 그렇고 삶이 그렇듯, 뭔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겠지. 하지만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고, 그럴 때 살아 있음의 충만함을 느낀다.
달리기는 가장 자연에 가까운 운동이자 정직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맨 몸으로 아무런 도구 없이 바람을 헤치며 나아갈 때.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겨루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의 의지와 힘으로 목표한 데까지 달릴 때.
특히 지는 것을 싫어하고 성격이 급한 나의 불같은 성질을 많이 다독여준 것이 달리기였다. 트랙을 달리다 보면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럴 때 지켜 온 페이스를 무시하고 나도 빨리 앞지르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간생간사’인 사람이므로 가끔은 5분 초반대나 4분 후반대의 페이스를 인증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멀리, 오래 가려면 내 폐활량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리하지 않는 페이스로 꾸준히 가는 것. 달리기가 내게 알려 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