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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쥬스 Aug 16. 2019

<삼삼한 이야기>그 241번째 통조림

통조림, 휴일, 효율

통조림


어떤 사람들은 지하창고에 통조림을 쌓아두고 산다. 세상이 종말한 뒤에도 사람으로 남기 위해. 지상의 양식이 사라진 뒤에도 허기에 삼켜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그래서 나는 여기에 글을 쌓아두기로 한다. 나라는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알 수 없는 날들을 위한 작은 양식들을 준비해놓기로 한다. 



휴일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어젯밤 마시다 만 물컵 위로 몇 가지 질문들이 여전히 떠있었다. 나는 거기에 답해야하는 입장이지만 그냥 물을 마셔버리는 쪽을 택한다. 


휴일 아침에 난 가능한한 단순해지려고 노력한다. 끊임 없이 번호표를 들이미는 의문과 걱정들 앞에 상담창구를 닫아버린다. 머릿속에 든 것이 뇌가 아니라 그만한 크기와 무게의 돌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삼십 분을 흘려보낸다. 


삼십 분 뒤엔 산책을 한다. 무빙워크에 올라탄 관광객처럼 휘휘 둘러본다. 아직 잠들어있는 상점들의 속을 들여다본다. 편의점에 들러 졸린 눈의 점원에게 인사하고 새로 출시된 군것질거리를 시도해본다. 단맛, 젖은 공기, 빗소리. 휴일이 시작된다.



효율


나는 효율적이어야 하는 인간이다. 효율적인 업무 진행을 통해 높은 마케팅 효율을 추수해야하는 업에 종사하고 있다. 퇴근 후에 직무와 관련 없는 사적인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도 나의 하루를 효율적으로 운영해야한다. 어쩌면 이 글조차 나의 잉여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쓰여지는지도 모른다. 효율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노동자이자 감독관이며 머신이자 사용자다. 나의 어떤 점을 보완해야 더 효율적인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는 집앞 도서관에서 업무 효율에 대한 책을 빌리곤 한다. 


그런데 그런 책들을 읽다보면 뱃속에서부터 울컥 치미는 게 있다. 


나는 비효율적이고 무용한 것에 시간을 바치며 살아왔다. 한번도 완결 지어본 적 없는 수십 편의 만화를 노트에 그리던 어린애였고 야자시간에 호밀밭의 파수꾼 같은 것을 보며 교문 밖으로 사라져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상상을 일삼는 고등학생이었다. 그리고 국문학과에 입학해선 소설 같은 무용한 것을 쓰고 읽는 대학생이 되었다. 그곳은 <필경사 바틀비>의 무용함을 지지하는 스승과 제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한 단어를 쓰기 위해 하루를 보냈다는 선배의 말이 꽤나 멋있게 여겨지던 곳이었다. 거기선 누구도 효율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효율 따위 생각해본 적 없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이 무용한 글은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게 보내오는 편지일지도 모른다.


그런 시절이 있었고 이제 나는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효율의 최전선에 몸 담고 있다.


이제 페이스북 지표는 내 바이오리듬이 되었다. 직장상사도 직장동료도 나 스스로도 효율, 효율, 효율이라는 구호를 반복한다. 실제로 그것이 회사가 내게 돈을 지불하는 이유다. 그런데 그걸 도저히 참지 못하는 나도 여전히 남아있다. 효율이라고 말할 때마다 나의 어딘가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샌다. 그러나 나는 그걸 못들은 척 해야한다. 두 머리에 한 몸, 샴쌍둥이 스텝으로 어쨌거나 한발씩 앞으로 가본다. 뭐라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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