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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an 12. 2022

불행해요?

일분 간의 소란스러움과 일초의 기쁨 그리고 찾아오는 십오 초 동안의 침묵

조금 긴 소원을 빈다면 십 오초의 시간 동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십이월 삼십일일이 되면 치르는 연례행사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빽빽하게 채우지 못한 다이어리의 공백을 보며 이 날은 바빠서 적지 못했건가 게으름 때문에 비워두었던가 기억나지 않은 날들을 애써 곱씹기도 하고, 새로 장만한 다이어리에 혹시 틀리지 않을까 몇 번이나 날짜를 확인하며 위클리와 먼슬리에 손수 무수한 숫자를 적는 날이기도 한 마지막 날.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은 기분과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찾아다녀야만 할 것 같은 부대끼는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이제 정말 일 분여 간의 시간을 남겨둔 시점이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분주한 사람이 된다. 


내내 옆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엄마를 툭툭 치며 짐짓 비장한 목소리로 얼마 남지 않았다며 부산을 떠는 것을 시작으로 언제 집에 들어왔는지 불 켜져 있는 오빠 방문을 벌컥 열어 삼십 초 남았다는 말을 전하며 재촉을 하고 선잠을 자고 있던 강아지도 한껏 들뜬 표정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하는 십이월 삼십일일 열한 시 오십구 분 삼십 초. 잡으려면 도망가고 멀어지면 뒤쫓아 오는 강아지를 잡기 위해 추격전을 펼치던 우리는 티브이에서 들려오는 카운트 다운 소리에 마음이 급해져 강아지를 들쳐 안고 티브이 앞에 모여 앉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하는 강아지를 가운데에 앉혀두고 손에 손을 잡은 채 거꾸로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5, 4, 3, 2, 1! 해피 뉴 이어! 티브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눈을 꼭 감은 채 강아지의 얼굴에 이마를 맞대고 소원을 빌어본다. 딱 십 초의 시간 동안. 조금 긴 소원을 빈다면 십 오초의 시간 동안.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묻지 않는 것이 나름의 전통이다. 소원을 말하면 약효가 떨어진다는 미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분 간의 소란스러움과 일초의 기쁨 그리고 찾아오는 십오 초 동안의 침묵이 우리가 치르는 연례행사다. 작년 이맘때 빌었던 소원을 이미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새로 짓게 되는 소원들. 세계 평화와 지구촌을 사랑하자는 말보다 거창한 티끌 같은 소원을.


드라마 <연애시대> 


내가 즐겨 찾는 드라마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노랗게 빛을 내기 시작한 아침, 찬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던 주인공은 우연히 벤치에 앉아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행복하냐고 묻는 사람에게 불행하냐고 되묻던 주인공은 무심히 다가가 마치 소중한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고 심장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한다. 불행에서 행복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가 그 안에 있다는 듯이. 마침 만땅으로 찬 행복을 나눠주겠다며 밝게 미소 짓는 주인공의 얼굴을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빤히 쳐다본다. 만땅으로 찬 행복이 도통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채. 만땅으로 찬 행복과 무엇이 그리도 행복하냐고 묻는 비관,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불행하냐고 조심스럽게 묻는 목소리와 왼쪽 가슴에 손을 올린 채 벤치에 혼자 남겨진 한 사람의 모습이 작년의 나를 자주 지켜주었다. 


여전히 납작 엎드려야 숨을 쉴 수 있는 하루가 대부분이지만 조심스럽게 '불행해요?'라고 묻는 질문에 감히 '불행하진 않아요. 아니, 조금 행복도 한 것 같아요.'라고 담담히 말하는 어느 날의 나를 떠올린다. 만땅이라고 명료하게 강조하는 목소리가 왼쪽 가슴에 울려 퍼질 어느 날을. 세계 평화보다 거창한 티끌 같은 마음을 담담히 새겼던 우리의 소원을 남겨보는 이천이십이년 일월 십이일이다. 




사월 인스타그램 

사월 유튜브 <사월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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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3살 두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을 담아낸 시나리오집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꾸면서도 변화하는 자신의 몸에 당혹스러움을 느끼기도 하고, 평생 함께 할 거라 자신했던 친구와의 관계는 해명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합니다. 언젠가 헤어질 거라 생각했던, 서로를 몹시도 싫어하는 줄만 알았던 부모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과 믿음을 예상치 못한 순간에 보여주기도 합니다. 너무도 가까워서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낸 시나리오입니다. 독립출판으로 만들어낸 책이기에 독립 책방과 제가 직접 보내드리는 구매 신청 폼에서만 책을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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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말로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꾹꾹 눌러 담아냈습니다. 

부디 독자님들께 그 마음이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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