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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아직이라니까요~

2025.10.15 (9m 23d)

by 슈앙

스마트 기기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나와 남편의 의견차는 큰 편이다. 남편은 스마트 기기 사용은 일찍 해도 상관없을 뿐 아니라 너무 늦으면 또래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여긴다. 엄마의 무조건적인 통제는 아이의 세계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한다. 특히 한국은 교육과 놀이에 스마트기기 의존도가 높아, 어릴 때부터 쥐여 주어 다루는 법을 일찍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유튜브 전문가들의 말을 따라 했다. 모바일이나 TV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방해하고, 책을 멀리하게 되니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것이 내 논리이다. 이에 대해 편은 독서도 중요하지만, 유튜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간접경험이 훨씬 실질적이라며 독서의 가치는 나보다 낮게 보고 스마트기기의 가치는 나보다 높게 보는 듯했다.


남편은 학원 강사로 다양한 아이들을 가까이 접하는 편이다. 10년 넘게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엄마들의 게임과 모바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통제로 아이들이 외톨이가 되는 과정을 본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튜브 말을 따라 하는 내 의견으론 본인의 생각을 접을 뜻이 없었다. 실제로 게임할 줄 모르는 남자아이가 왕따 당하면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했다는 사례를 듣다 보면 내가 설득될 판이다.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일찍 스마트기기를 주자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말로 먹고사는 학원 강사를 설득하기엔 내 논리가 부족했다. 그래서 생물학적 논리로 설득 방향을 바꿨다. 시력은 만 4세까지 급속히 발달하는 시기이니 그전까진 TV 시청은 물론 모바일도 금지! 남편은 또 반발한다. 본인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해도 눈이 안 나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컴퓨터의 대중화는 1990년대부터이니 우리는 10살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았을 거이며, 양갱이가 내 유전자를 따르면 시력이 안 좋을 수 있으니 만 4세까진 안된다고 했다.


드디어 설득 성공! 스마트 기기 유예 기간은 만 4세로 우선 합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거실에 있는 TV 도 떼어내 작은 방으로 옮겨 달았다.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TV 옮기는 건 나중에 해도 되는 것이었다. 낮잠 시간이나 육퇴 후에 거실에서 퍼질고 앉아 TV 보면 좋았을 텐데 싶은 아쉬움이 있다) 남편은 모바일 없이 육아하는 건 힘들 거라며, 자기 논리에 갇혀 모바일 안 보여주려고 자신을 너무 옥죄지 말라고 했다.


옛날 프랑스에서는 아기 재우는 게 너무 힘들어 와인을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심한 경우, 신생아 시기에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했단다. 당시 프랑스 엄마들이 단순히 쉬려고 그랬을까. 밀린 집안일과 이웃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 한 선택이었으리라. 하지만 와인은 아기를 피폐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인생을 망친 꼴이다. 나는 지금의 모바일 기기가 당시 프랑스 엄마들이 와인을 선택한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최대한 늦추고 멀리하고 싶다.


물론 지금 우리 사회는 스마트 기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고 남편 말대로 또래 집단에서 잘 적응하려면 필수이기에 TV나 모바일 게임을 무슨 사탄처럼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로 접하는 정보는 빠르다. 육아휴직 전, 한 회의에서 전무님이 AI 사업을 강조하며 우리도 깊이있게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한 담당님이 독서광인 전무님을 의식해서인지 직원들에게 AI 관련 도서를 읽도록 권장하고 있다며 자랑스레 말했다. 전무님은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몇 달 전에 만들어진 책이 무슨 소용이냐며, 며칠 전 만들어진 유튜브를 찾아보라고 하더라. 전무님이 독서광이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추석 연휴에 시댁에 있는 동안, 아버님과 어머님은 TV를 꺼주셨다. 어머님은 인생의 낙인 드라마도 못 보셨다. 죄송스러웠지만, 양갱이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핑계로 TV를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이런 며느리의 의견을 온전히 수용해 주셨다. 덕분에 양갱이는 온 집안 어르신들이 모여 TV를 보신 15분도 채 안된 시간 외엔 TV를 보지 않았다.


문제는 친정이었다. 아빠가 자꾸 양갱이에게 TV를 보여주신다. TV를 넋 놓고 보는 모습이 귀엽다는 이유로 말이다. 몇 번을 잔소리해도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어떻게 안 보여주나며, 되려 큰소리시다. 시력 발달과 유전적 우려를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 하신다. 남편보다 설득하기 어려울 줄이야. 논리적 설득은 안되고 이럴 땐 엄마에게 일러야 한다. 엄마가 나서서 한소리 들으신 후, 아빤 그제야 TV를 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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