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0 (9m 28d)
추석연휴 막바지부터 어제까지 친정에서 약 2주간 지냈다. 부모님이 양갱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하시고, 나도 맛있는 밥 얻어먹고 엄마랑 쇼핑도 다닐 겸, 겸사겸사해서 내려갔다.
지난 2주간 부모님의 양갱이를 대하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이상했다. 아빠는 전형적인 경사도 아버지셨는데 이렇게나 웃음과 말씀이 많고 적극적인 성향인 줄 몰랐다. 엄마는 우리 남매 키울 때는 이쁜 줄 몰랐다고 하시더니 양갱이 앞에서 온갖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민망할 정도였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아빠
- 전부터 마트 카트에 양갱이를 꼭 태워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코스트코에 갔다. 양갱이는 눈이 휘둥그레서 신나게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마트를 이렇게나 좋아했었나. 실은 유모차 아래 공간에 식료품을 담으면서 장을 봤기 때문에 한 번도 양갱이를 마트카에 태울 생각을 못 했다. 유모차에 탄 양갱이 표정을 볼 수 없었고, 시야가 마트 카트보다 낮았기 때문에 이 만큼이나 좋아할 줄 몰랐다. 아빠는 코스트코 모든 제품을 양갱이에게 보여주고 만지게 해 줄 기세였다. 코스트코 카페테리아에서 얼음을 주워 양갱이 손에 쥐어 쥐며 재밌어라 하실 땐 부끄러워 멀리 피해 있었다. 낮잠 시간만 아니었다면, 코스트코 문 닫을 때까지 나오지 못했을 거 같다.
-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시는데, 한 번은 저녁 기도할 때 양갱이를 데리고 들어가셨다. 양갱이는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한지 얌전히 지켜봤다. 아빠는 그런 양갱이가 기특하고 신기하다며 그날 이후 매일 저녁마다 양갱이와 기도하러 들어가셨다. 염주를 양갱이 목에 걸고 장난감처럼 놀게도 하고 합장도 시켜보고 한참을 데리고 놀아주셨다. 우리 남매랑도 이렇게 놀아주셨던가. 나랑 남동생이 다투면 이불 위에서 결투시켜놓고 좋아라 하시며 장난기 많긴 했지만 오랜 시간 오롯이 아빠와 시간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던 거 같다.
엄마
- 불면증인 엄마는 굳이 양갱이랑 함께 주무셨다. 양갱이 몸부림으로 발에 차여 제대로 못 주무셔도 행복해하셨다. 그러다 사흘 째 되던 날, 도저히 안 되겠다며 따로 누우셨다. 실로 오랜만에 새벽 6시까지 통잠을 주무셨다.
- 각종 의성어 의태어를 무한 반복하셨다. 호랑이는 어흥~, 고양이는 야옹~, 강아지는 멍멍~, 매미는 맴맴~, 양갱이는 엄마 아빠~.. 밥 먹을 때, 놀 때, 차에서, 목욕할 때 시도 때도 없이 하셨다. 얼굴 표정, 손짓 발짓 다 하시는 모습이 신기했다. 엄마도 민망한지 물끄러미 보고 있는 내 얼굴을 돌리셨다. 어느 날부터인가 양갱이도 어설프게나마 어흥~ 맴맴~ 따라 하려 한다. 책에서 이때쯤 의성어, 의태어 해주면 좋다고 하길래, 말하다 중간중간 섞어서 해주곤 했는데 이 정도로 자주 해줘야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그 외에도 만세, 입으로 내는 똑딱소리 등등 여러 가지를 가르치셨고 양갱이는 신기하게도 하나씩 익혀 나갔다. 엄마는 엄청 뿌듯해하셨다.
- 고운 피부를 위해 우윳물로 꼭 목욕해야 한다며 엄마는 아무리 피곤해도 목욕은 직접 시키셨다. 내가 그냥 샤워만 해도 된다고 해도, 하루 정도 스킵해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몸이 부서져도 목욕은 해야 한단다. 굳이 대야와 우유를 챙겨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우유는 또 아깝게 유기농 우유를 사용하셨다. 요즘엔 그냥 우유도 얼마나 비싼데.. 덕분에 양갱이 지루성 두피염은 한결 좋아졌다.
- 친정에 지내는 동안에는 사제 이유식을 먹이려고 했다. 지난번 경험에 비춰 아무래도 일거리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유식 만들려면 다지기가 있어야 하는데 친정에는 다지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말도 안 된다며 이유식은 꼭 만들어 먹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결국 그 큰 다지기까지 챙겨 내려갔다. 우리 남매를 키울 때는 이유식 어떻게 하셨는지 여쭤볼랬더니, 엄마는 그제야 솔직히 이유식 만들어 본 적 없다고 말씀하셨다. 거버라는 이유식을 사 먹였다나. 게다가 엄마 때는 이유식 개념이 없어서 그냥 미역국이나 된장국에 밥 말아 먹였단다. 돌 전까지 간이 되어 있는 음식은 절대 금지라는데, 책과는 참 상반되는 이야기다. 그래놓구선 나보곤 이유식을 만들라고 하시다니.
- 집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양갱이 들어 올리다 등근육이 놀랐다. 파스와 찜질팩으로 좀 낫나 했더니 결국 앓아누우셨다. 결국 양갱이 돌보는 것을 포함하여 저녁밥, 빨래, 설거지를 혼자 해야 했다. 엄마는 다음부터는 일주일만 있다 가라고 하셨다. 미니멀리스트병이 도져 부엌 찬장과 옷방을 싹 정리해드리지 않았으면 엄마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을 뻔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더 반가운 게 손주라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