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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Sep 21. 2023

12명만 초대한 진짜 스몰웨딩

먼 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였던가..

실리를 추구하는 독일 사람들은 시청에서 증인 2명 정도 초대해서 와인 한 병으로 간단히 축하 세리머니를 하고 바로 혼인신고서를 접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독일인의 방식은 나의 결혼식 로망이 되었남다른 스타일에 스스로 뿌듯해했었다.


 이런 얘기를 주변에 했을 때 반응은 대체로 이해가 안 된다는 이었다. 런 무리한 독특함이 유별나다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가 그들의 반응에 살짝 주눅이 들기도 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평범하게 하지 않으려면 많은 사람들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 결혼식이지만 부모님도 자식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고 남편 될 사람도 특히 시댁 쪽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걸 이해했다. 이런 내 계획을 말했을 때 "재혼인 줄 알겠다", "초대하지 않으면 섭섭해한다"라는 사람들의 반응도 수긍이 되긴 했다. 그러면서 어느 정도 포기했었다.


 어릴 때는 아직 먼 훗날의 일이어서 무조건 이렇게 해야지라고 다짐했었다. 나이가 들고 결혼 적령기를 한참이나 지나서는 호텔 결혼식이든 작은 결혼식이든 결혼이란 하기나 할라나 하는 시점까지 오게 됐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부모님은 세상의 풍파를 겪고 나선 굳이 크게 열 필요 없다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히다. 급기야는 아무도 초대 안 해도 된다고까지 하셨다. 게다가 나이 든 딸내미가 어떤 결혼을 하든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생각도 없으셨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다. "5명 이상 집합금지"란 단어는  일상 용어 수준이었고 국가에서 허락한 그 이상 모이는 모임은 결혼과 같은 인륜지대사뿐이었다. 그마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뜻 초대하지도, 축하하러 가지도 못 했다. 이 시국에 결혼하면 아무도 부르지 않아도 절대 이상하게 생각하기는커녕 고개 끄덕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 본 먼 나라 이웃나라 독일 사람 이야기를 굳이 꺼낼 필요도 없었다. 이때 결혼하면 딱이다 싶었는데 마침 결혼할 남자도 찾았다!


 그런데 결혼할 사람이 종손이다. 장손도 아닌 종손말이다. 한옥집에서 갓 쓰고 도포 입는 수준은 아니지만 1년에 제사가 9번이고 어머님은 김치를 담그실 때 배추 모종부터 시작하신다. 다행히 두 누님의 결혼식으로 이미 친인척을 초대한 성대한 결혼식을 두 번 겪었다. 두 번 모두 가족들이 녹초가 되었다고 한다. 다들 똑같은 걸 겪고 싶지 않아 하셨다. 남편은 결혼식에 대한 뚜렷한 로망은 없었다. 다만 자기 결혼식만큼은 친척들 다 불러 모아 정작 그 잔치를 즐겨야 할 당사자와 가족들이 손님들 맞이하고 케어하느라 굶는 상황은 너무 싫다고 했다. 


 직계가족만 모이는 작은 결혼식 하고 싶다는 내 바람은 시대의 물결과 맞아떨어졌고 양가에서도 쌍수 들고 환영해 주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결혼식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일반 결혼식만큼 돈 드는 연예인식 작은 결혼식이 아닌 진짜 작은 결혼식. 시청 결혼식만큼 실리적이면서 지금까지 키워주신 부모님들께 감사의 예의를 갖추고 각자의 가족들과 서로 인사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라는 생각으로 석 달 뒤의 결혼식을 구상했다.


 먼저 손님은 직계가족과 각자의 베프 1명씩만 초대하기로 했다. 신랑 측 7명, 신부 측 5명, 이렇게 손님은 12명 당사자 2명 합해서 총 14명이 함께 하는 진짜 작은 결혼식이다.


 장소는 워커힐 호텔 중식당에서 최대 14명이 들어갈 수 있는 룸을 2시간 정도 빌렸다. 당시 식당은 코로나 여파로 직원들이 한 달씩 번갈아가며 휴직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14인분 코스 요리 예약은 굉장히 반가운 고객이었다. 서비스가 굉장히 좋았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 해주었다. 어머님은 결혼식을 워커힐 호텔에서 했다며 아직도 재밌어라 하신다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처럼 작은 결혼식을 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50명 정도 초대하거나 작지만 럭셔리한 결혼식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고 구상해야 했다.


상견례는 결혼식 전날 차 한 잔,

스튜디오 촬영 skip,

드레스 대신 흰 정장,

메이컵은 호텔 회원권 포함된 50% 할인 티켓으로,

사회는 직접,

웰컴 기프트는 신랑 옷 잘라서 직접 만든 비즈왁스랩,

식순은 한국 전통혼례를 간략하게 따랐다.


세상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12분은

우리 두 사람의 말과 행동에 오롯이 집중하고

가장 진심을 다해 축하해 주었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 시간을 즐겼다.


 한참 늦은 결혼인데도 못내 아쉬워하셨던 엄마조차

식이 끝나고 웨딩 프로그램으로 팔아도 겠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12명만 초대한 진짜 스몰 웨딩 (상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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