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남이 집으로 초대하겠다고 말했다. 우선 집 청소해야 하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처음 만난 지 한 달 좀 안 되었을 때다. 그런데 그 말 한 지가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도 청소 중이냐고 물었다. 그렇단다.
일주일 동안 못 끝낼 청소가 뭐가 있지?
그냥 가겠다고 말했다. 코로나 절정 시점이라 딱히 할 것도, 갈 데도 없어서 그날 바로 갔다.
소개팅남은 약간 쑥스러워하면서 나름 청소한 거라는 한 마디와 함께 현관문을 열었고 나는 호기심 가득 담아 들어갔다.
헉.. 여긴 사람이 사는 곳인가.. 작업실인가..
일주일 동안 뭘 정리했다는 거지..
크고 작은 물건들이 발에 채이고 옷은 제대로 걸려있는 게 없었다. 행거랑 서랍장은 왜 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부엌 찬장문은 왜 다 열려 있는 건지.. 그렇다고 그릇이 찬장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냉장고 위에는 뭐가 그렇게 많은지.. 이 남자는 전선 마니아인가. 바닥과 벽에 온갖 전자제품의 전선줄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다. 제일 충격적인 것은 현관문 열자마자 보이는 것이 시커먼 이케아 컴퓨터 책상 위의 Curved Dual 모니터가 더 시커멓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커먼 모니터는 거실통창을 다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Curved TV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어두운 색의 이케아 협탁 위에 놓여 있었다.
도대체 일주일 동안 뭘 했다는 거지?
소개팅남은 이 지저분하고 너저분한 곳에서
꼼냥 꼼냥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상상의 정리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븐이랑 믹서기는 저기에 놔두고 침대는 안쪽으로 옮기고 저 박스는 버리고 양말은 이 서랍에 넣고.. 저 답 안 나오는 컴퓨터 책상은 어디로 옮기지..
집 구경하면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데 소개팅남은 베란다로 나를 이끌었다. 수원화성이 보이는 20층의 야경을 보라며 나를 뒤에서 살포시 안았다. 하지만 나는 베란다를 정리하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말이다.
도저히 이 집에선 키스도 허그도 집중할 수 없어서 나가자고 했다. 소개팅남은 그런 나를 이해해 줬고 우리는 내가 사는 집으로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한 달 정도 더 만나서 더 친해진 후에 조심스럽게 정리해도 되냐고 물어야지. 한 달이면 너무 긴데.. 일주일 뒤에 말해볼까. 일주일이면 실례일까.
결국 한 시간 뒤에 물었다.
"정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집을 봐서 알겠지만 나는 정리하는 걸 좋아하거든. 우리 집 실컷 한 것도 모자라 대구에 있는 부모님 댁도 정리해 드렸는데 되게 만족해하셨어.. 혹시 내가 집 좀 정리해 줘도 될까?"
"ㅋㅋㅋ 어딜 정리하고 싶은데?"
"우선 부엌만 좀 해보고 싶은데.. "
"그래 뭐.. 해도 돼."
"고마워.. 그럼 다음 주 주말에 가서 해도 될까?"
그 이후 소개팅남의 집은 주말의 내 놀이터가 되었고 소개팅남은 주말마다 나와 함께 대청소를 하게 됐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 집은 내 스타일대로 바뀌었고 나의 신혼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