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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저장소 Mar 19. 2024

버틸 수 있는 용기

지금 보니 난 용기가 부족했다. 

이제 여기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구나.

퇴사를 결정하게 된 계기는 심플했다. 퇴사를 하면서 생기는 여러 해프닝이야 뭐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매끄럽지 않았지만.(또 너무 매끄러웠으면 서러웠을 수도)


꽤 오랜 시간 일했으니 좀 쉬어도 될 것이라는 보상심리도 있었고. 쉽게 퇴사 승인도 나지 않았고. 뭔가 계획해 진행하기보다, 사고 치고 해결하는 나의 의사결정 스타일 덕분에 아무 준비 없이 지역 의료가입자가 되었다.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갑자기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시간을 보내다 덜컥 무서워졌다. 


처음엔 시간이 없어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했다. 그리고 미뤄왔던 병원을 갔다. 그리고... 쓸데없는 것들을 했다.. 그리고.. 그리고.. 뭘 해야 하지??? 

어떤 이는 시간이 문들어지는 경험을 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는 가만히 쉬며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유전자는 없다는 걸 굳이 알아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20여 년을 쭉 소개로 이직을 해버린 탓에 제대로 된 이력서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력서는 있지만 포트폴리오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의 이력서는 꽤 어필을 잘했는지 면접 제의가 들어왔고 1차 면접은 너무나 즐거웠다! 

위치도 기존 회사와 가까웠고 1차 실무진들 모두 너무 이야기도 잘 통하고 좋았다. 면접을 끝나고 나오면서 앞으로 어떻게 일해야겠다며 계획까지 세우고 다시 일할 수 있음에 즐거웠다. 다만 대기업이라 그런지 채용 프로세스가 상당히 길었다. 서류 면접, 1차 면접, 합격여부 통보등의 과정이 1,2주 텀으로 진행되었다. 또 나는 이력서를 딱 두 군데만 지원하고 놀고 있었다. 왜 당연 같이 일할 거라 생각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2차 면접장에 들어간 지 1분 만에 Plan B를 세워두지 않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면접관이... 허리가 아프다며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내려다보며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것이다.. 하.. 나는 신을 영접한 무당처럼 미래가 보였다. '아 난 저 사람이랑 안 맞아서, 아님 개판 싸우고 퇴사를 하는구나' 미련없이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 두고 나왔다. 그렇게 한 달 반이 훌렁 지나가 버렸다.


문제는. 가고 싶은 회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시절 만난 지인들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다며 질책을 했지만,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 20년, 성인이 돼서 취업한 지 20년, 이미 인생의 반을 시회인으로 살아왔던 나는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명확한 맞추기 어려운 퍼즐 같아 보였다. 

중구난방, 울퉁불퉁한 퍼즐이 들어갈 곳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고 구멍에 맞추어 내 퍼즐 귀퉁이를 접을 생각도 없었다. 

결국 일하며 행복하고 싶은 욕심과 오만한 내 퍼즐은 각자 내 머릿속에 자리를 차지하며 서로 양보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니 한숨만 나올 수밖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방황은 오래되지 않았다. 서로 양보할 수 없다고 버팅기던 두 마음의 싸움은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소식에 바로 종식되었다. 그 배부른 고민은 배가 고파지니 바로 접어졌고, 회사와 상관없이 나의 능력이 필요한 곳에서 적당히 일할곳을 찾아 지금은 월급쟁이가 되었다. 


내가 그 방황을 조금 더 버텼으면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까?

버티는 용기가 더 필요했을까?


지나간 시간에, 지난 결정에 후회하지는 않는다. 후회해 바야 난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다만, 또 같은 상황이 생길 때 좀 더 버틸 수 있게 나는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도 방황도 준비 없이 하는 건 그냥 신세한탄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나는 이 정도도 대비를 못했던가, 그동안 일하면서 뭘 했던가.. 이러면서 말이다. 


내가 버티는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지금이라도 준비를 하자.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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