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늦은 네 시에 하루 일과를 마치고 화성에 있는 농장엘 갔다. 12월의 짧아진 해는 내 마음을 분주하게 만들었다. 서둘러 겨울바람에 흩어진 주변들을 정리하는데 차가운 어둠이 일손을 멈추게 했다.
농장 가을 풍경
옷을 두껍게 차려 입고 산책길에 나섰다. 밖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겼고 고요한 시골 동네는 차가운 바람소리에 휘청거렸다. 대문 곁에 홀로 서 있는 느티나무는 무거워진 이파리를 다 떨 구고 간간히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으려 애쓰고 있다.
아내와 촘촘 걸음으로 대문을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개 한 마리가 짖어 대기 시작했다. 도로변 옆으로 개발이 진행되다 멈춘 수 만평의 땅이 있는데 그곳에 살고 있었던 유기 견이었다. 이곳을 산책할 때면 항상 이곳에 살고 있는 유기 견들과 눈이 마주치는데 이 녀석들은 우리의 행동을 관심 있게 쳐다볼 뿐 짖지는 않았었다. 그런 유기견이 지금 바로 앞에서 짖고 있는 것이다. 어두워서 유기견의 위치 파악도 어렵고 개의 모습은 더더욱 확인이 불가능했다.
“혹시 나에게 덤벼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크게 소리치고 박수를 쳐서 유기 견을 멀리 쫓아버렸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새끼 강아지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앞이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새끼 강아지 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내와 나는 산책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간밤에 만났던 유기 견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먹을 것을 준비해 아내와 함께 다시 그곳을 찾았다.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들었던 강아지들의 신음소리 때문에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어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깊은 농수로에 빠진 강아지 2마리를 찾아냈다. 생후 2-3개월쯤 된 것으로 보였다. 즉시 내려가 반쯤 물에 젖은 강아지 두 마리를 꺼내 주고 준비해 간 먹이를 주자 맛있게 먹었다. 강아지를 어미에게 데려다주려고 어미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늘 어미가 있었던 곳을 알기에 그곳으로 새끼 강아지를 데려갔다. 그런데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그곳에 강아지들을 남겨두고 돌아서서 오는데 두 녀석이 계속해서 날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뒤를 돌아가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따라왔다. 도망치듯 달려 농장 대문을 닫았는데 벌써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자세히 보니 태어나 단 한 번도 목욕해 본 적이 없어 꼬질꼬질한 털에 벼룩이 온몸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지 연신 긁어대는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불쌍해서 박스 하나 준비하고 겨울에 밖에서 일할 때 입었던 파카를 밑에 깔고 강아지들을 넣어 주었다. 밤새 차가운 물속에서 힘들었는지 둘이 머리를 맞대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오후에 중학교 친구 두 부부가 농장에 왔다. 한 친구가 강아지들의 사연을 듣더니 이름을 지어 주었다.
토랑이 와 토실이는 가족이 되어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주일에는 사연을 들은 많은 분들이 토랑이 와 토실이를 보기 위해 온다고 한다. 목욕시켜 준다고 하니 꼬질꼬질한 토랑이 토실이의 멋진 변신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