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지 안에서 썩어가던 완벽한 부부

세상에서 가장 친밀했던 이들이 가장 정교하게 증오하기까지

by 김이후

"세상에서 가장 친밀했던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증오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기억 속 그들은 화려하고 매끈한 포장지로 싸인 완벽한 선물 상자 같았다. 나에게는 이혼 소송을 진행 중인 친구가 있다. 우리 부부와 대소사를 함께하던 가장 친한 부부였다. 아들도 6개월 차이라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만나 서로의 육아 스트레스를 함께 풀었다. 그런 그들은 지금 1년 반째 소송 중이다. 불꽃이 튀듯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한 그들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 부부보다 더 사이가 좋아 보였다. 친구의 아내는 친구가 밤늦게 술을 마시고 와 인사불성이 되어도, 다음 날 말없이 북엇국을 끓여줄 정도로 이해심이 넓었다. 친구도 퇴근 후면 아이를 꼭 직접 씻겨주고 시간마다 육아 유튜브를 보며, 육아에 깊이 참여했다.


우리 부부와 만날 때면 비교되기까지 했다. 친구는 약간의 냉랭한 분위기를 아내가 풍길 때면 언제든 애교스러운 장난을 쳤다. "내가 이래서 얘랑 못 헤어지고 산다"며 친구의 아내는 금방 활짝 웃었다. 내 아내도 친구의 저런 애교스럽고 분위기를 가볍게 푸는 능력을 칭찬했다.


모든 것이 다 좋았다. 아니 좋아 보였다. 그들은 아주 잘 쌓아 올린 포장지 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처음 이혼 소장을 받았을 때, 친구는 우리 집에 와 분노에 차 원망을 쏟아내며 술을 마셨다. 갑자기 아내가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갔고, 며칠 뒤 소송장이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때 친구는 아내가 사실 예전부터 못마땅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지각하며 보내는 아내의 게으름에 진절머리가 난다고 했다. 며칠이나 쌓인 설거지를 새벽에 혼자 하며,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 아내가 먼저 이혼 소장을 날린 사실이 어이가 없다며, 쓴 술을 단숨에 삼켰다.


아내에게서 들은 그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친정 가족과의 불화, 잦은 음주, 독단적인 결정. 그들은 아주 전부터 어긋나 있었고, 대화가 끊긴 지는 오래라고 했다. 특히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행동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술에 취해 자는 아이를 깨우며 ‘엄마 아빠가 사이가 이렇게 안 좋은 걸 아이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환멸이 난다고도 했다.


서로의 말은 극단을 달렸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이 지경까지 왔다. 그들의 어긋남은 이혼 소송 과정에서 충분히 드러났다. 서로의 살점을 베어내는 소모전은 오고 가는 수많은 증거서류로 알 수 있었다. 둘만의 은밀했던 가정생활이 낱낱이 해부되어 법정의 서면으로 제출되었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사실은 같고 주장은 달랐다. 서로의 살점을 베어내는 정교한 서사들이 오갈수록, 판결의 시간은 하염없이 늦춰졌다.


문제는 그들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다섯 살인 아이는 인생의 절반을 부모의 이혼 소송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면접교섭을 통해 아빠를 만난다. “아빠는 왜 우리 집에 놀러 안 와?”라고 묻는 아이 앞에서, 친구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말을 핑계 삼아, 그들 부부는 그렇게 버텨내고 있다. 서로를 극도로 미워한 탓에, 정작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버거운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그들이 버린 포장지 조각들이 이제 아이의 발밑을 찌르는 가시가 되었다.


우리 부부는 얼마 전 친구를 불러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다시 잘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타인의 지옥을 구경하는 자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무책임하고 오만한 친절이기 때문이다. 그의 인생은 나의 관할권 밖이었고, 나는 그가 짊어진 증오의 무게를 대신 들어줄 수 없었다.


우리는 아이 이야기를 하며, 서로에게 향한 날을 조금만 둥글게 깎을 수는 없겠냐고 물었다. 그는 답하지 않고 웃음으로 대신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알게 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다. 나는 그저 주변인으로, 그들이 버린 포장지 조각들이 아이를 더는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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