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을 감당하며 조용히 일을 끝맺는 사람에 대하여
회사에는 꼭 한 명쯤, 대신 욕을 먹는 사람이 있다.
내 기억 속 한 과장님은 유난히 그 방패가 무거워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아꼈다. 꼭 가야 하는 회식에는 얼굴을 비췄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쯤이면 정해진 시간에 자리를 떴다. "아이가 아파서요" 같은 구질구질한 첨언은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겉옷을 챙겨 들고 주변에 목례를 남긴 채 스윽 사라질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불편해했다. 정이 없고 분위기를 깬다며 날 선 말을 던졌다. 반면 누군가는 그를 반겼다.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없어 일하기 편하다는 이유였다. 호불호의 파도가 그의 등 뒤에서 늘 일렁였지만, 그는 해명하거나 굴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세운 경계선 위에서 오롯이 정직했다.
그는 종종 기꺼이 총대를 멨다. 모두가 싫어하는 행사 기획안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였다. 불필요한 의전과 번거로운 사전 예약 같은 군더더기들이 과제처럼 쏟아졌다. 그때 그가 정적을 깨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건 꼭 해야 합니까?”
그 말 한마디가 기폭제가 되어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결국 회의실을 나올 때 우리 손에 들린 건 간소하지만 핵심만 남은 계획서였다.
그가 주관하는 회의는 마음이 가벼웠다. 주제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는 가차 없이 선을 그었다. “관계없는 이야기는 메신저로 따로 해주시죠.” 회의는 10분을 넘기지 않았고, 끝난 자리에는 명확한 정보만 남았다. 그는 회의를 회의답게 끝냈고, 일은 일로 남겨두었다.
문제는 이런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관리자도 꽤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신적 지주라 말하지만 그들은 옹고집이라 말한다. 한 때 그가 파트이동을 해야 한다며 업무분장을 강제한 적이 있었다. 조직 내에 생기는 평범한 일상 중 하나인 줄 알았었다. 그 당시 관리자와의 트러블로 인해 그가 꽤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것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회사에는 일을 늘리는 사람이 있고, 일을 끝내는 사람이 있다. 그는 늘 후자였다. 관리자 입장에서 그런 사람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대개 공은 일을 요란하게 늘려놓은 전자의 몫으로 돌아가곤 했다. 업무 공헌도와는 무관한 보상이었지만, 그는 억울함을 토로하지도, 공정하지 못함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가 방패를 들고 서 있어 준 덕분에 나의 회사 생활은 평온했다. 탁자 앞에서 지루한 설교를 버티는 시간이 줄었고, 이유 없는 대기 시간은 사라졌다. 모두가 기피하는 순간을 그가 대신 감당해 준 덕분에, 우리는 그의 뒤에서 조용히 주어진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다’는 말은 그를 위해 존재하는 수식어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 끝내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늘 입안에서 맴돌다 흩어졌다.
그의 역할을 언젠가는 내가 대신해야 할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 미움을 감당할 용기도, 상급자에게 “거기까지면 충분합니다”라고 말할 배포도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가 든 방패의 그림자에 기대어, 겨우 하루를 버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