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첫 장을 넘기는 마음
지난 글에 고백했듯, 내 인생은 사소한 착각으로 시작됐다.
그 착각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설명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언제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 취미를 적으라는 란에, 딱히 쓸 말이 없어 ‘독서’라고 적었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1~2학년쯤. 그때는 취미가 독서라는 말이 멋져 보였고, 무엇보다 무난했다. 나를 설명할 말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꺼내기 좋은 말이었다. 이 말은 지금 4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소개란에 남아 있다.
책을 읽으며 분명 무언가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또 꾸준히 읽지도 않았다. 그저 ‘취미가 독서’라는 말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책을 완전히 놓지는 않은 정도였다
책이 늘어나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나와 비슷한 '취미가 독서'인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독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그들과 책에 관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들은 나에 비해 꽤 진심으로 책을 마주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느라, 아니 이해하느라 책을 거의 펼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매 스터디 시간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책을 읽고도 마치 책을 쓴 작가처럼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다. 누군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다음 말들이 쏟아졌다. 나는 다 마신 얼음컵에서 빨대 소리만 내며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부럽고 분했다.
겨우 하나 있는 취미인데, 매주 스터디가 끝날 때마다 머뭇거리며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조용히 집으로 향하는 내 모습이 초라했다. 그렇게 30대를 보내며, 읽지 못한 분함을 대신하듯 하나둘 사 모으다 보니 현재 나의 서재 속 책들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층층이 쌓여 있다.
책은 참 희한하다. 책을 읽자고 마음먹으면, 이상하게도 고르는 데서부터 막힌다. 고르는 시간이 읽는 시간보다 길어질 때도 있다. 결국 책을 펼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간다. 또 어떤 책은 강하게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읽지 못한다. 심지어 절반도 넘기지 못한 책도 있고, 산 기억조차 없는 책을 다시 사온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사실이 크게 문제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선물할 책이 한 권 생겼다 정도의 느낌이다.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는 나는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잘 읽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완전히 내려놓지 않았다. 다독하는 것도 아니고 깊이 반복해서 읽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읽어 나가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독서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만둘 이유가 오지 않은 상태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지속이란 잘 해내는 것이 아니라, 끝내 버리지 않은 상태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여전히 ‘취미가 독서’인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일처럼. 오늘도 나는 다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새로 산 책의 첫 장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