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밖으로 나를 '구출'하는 일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에 나를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

by 김이후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영하 10도에 육박하는 한겨울인 요즘, 이불속은 더욱 달콤하다. 발끝으로 전해지는 서늘한 온도는 조금만 더 누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변명을 차례로 줄을 세운다. 꾸역꾸역 일어나서 옷을 입지만 창 밖의 어둠을 보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든다.


그래도 몸을 일으킨다. 아직 어둠이 남은 거리로 나와 헬스장까지 걸어간다. 가기 싫은 마음은 여전하다. 어차피 씻을 거 헬스장에서 씻자 마음으로 정문을 통과하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어떻게든 출근 시간까지는 채우게 된다. 루틴은 내 의지보다 강하고, 그 사실이 나를 매일 여기까지 데려온다. ​


이렇게 하루를 시작한 날에는 마음속에 조금 다른 결의 무언가가 남는다. 대단한 운동을 한 것도, 몸이 눈에 띄게 달라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에게 기꺼이 점수를 주고 싶어진다. 이불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돌이켜보면 나는 늘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사람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다 별일 아닌 것에 멈춰 섰고, 그 멈춤은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계속하지 못해서 실패하고, 자책하느라 다시 멈추는 악순환. 나는 늘 시작은 과했고, 지속은 늘 부족했다. 나보다 더 빠른 사람들, 더 크게 성취한 사람들 곁에서 내 걸음은 늘 초라해 보였다. 사실은 제대로 걷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루틴을 선택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매일 아침 나를 이불 밖으로 '구출'하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의 출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새벽의 루틴을 혼자 수행하다 보면 스스로에 대해서 더 깊게 들여다보게 된다. 러닝머신 위에서 내 호흡이 가빠져오는 속도, 헬스장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새벽치고는 꽤 진지한 이야기들, 차가운 쇳덩이들을 움켜쥘 때의 온도.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거친 호흡이 마스크 너머로 흩어질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 감각은 나를 들뜨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억지로 시작한 내 루틴은 반대로 나에게 자유를 준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오직 나의 속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자유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요란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남들이 정해놓은 속도가 아니라, 오직 내 숨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 기준을 남이 아닌 나에게 두는 일. 그래서 더 자유롭다. 숨이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생각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만. ​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 새벽이 내 삶을 대단하게 증명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오늘도 나를 버려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금의 나는 그 정도의 증명으로 충분하다.


(이 글은 이전에 쓴 ‘새벽 헬스장의 사람들’이라는 기록에서 이어진 생각이다.)

https://brunch.co.kr/@doc1802/24

keyword
이전 02화나의 가장 오래된 거짓말, '취미는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