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여덟의 반지가 증명한 침묵의 관할권
나에게는 두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동생은 늘 말을 아꼈다.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 태도는 성격이라기보다 선택에 가까웠다.
나는 반대였다.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먼저 떠들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읽는 데 능숙했고, 기대가 자라는 속도보다 말이 앞섰다. 기대는 커졌고, 실망도 그만큼 자주 돌아왔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나는 늘 지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철없는 방식으로 자랐다.
동생은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봤다. 불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을 오랫동안 성격쯤으로 여겼다. 말은 아꼈지만, 선택만큼은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그것이 그가 세운 경계였다는 것을.
동생은 공부도, 취업도 자기 속도로 했다. 하기 싫은 일은 끝내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은 오래 고민했다. 말이 적었고, 신중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기대가 생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대는 종종, 감당해야 할 짐이 되니까.
그래서였을까. 동생이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독 마음에 걸렸다.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모태솔로 아니냐고 농담처럼 물으면 웃으며 넘겼다. 괜히 안쓰러웠다. 사랑을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지금 와서야 솔직해지자면, 연애 이야기를 꺼낸 건 동생이 늘 나에게 양보하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미안함을, 나는 말로 덜어내려 했다.
그래서 연애를 해야 정상이고, 결혼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는 내 삶의 순서를 동생에게도 자연스럽게 들이댔다. 인기가 없는 건 아니냐, 조금 꾸미고 다니는 게 어떠냐. 그런 말로 동생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나는 내 기준을 잣대로, 동생의 삶에 불필요한 잣대를 얹고 있었다.
어느 날, 회식 중이었다. 시끄러운 자리에서 좀처럼 먼저 전화하지 않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다이아 반지를 받았다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올가을에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만난 지는 1년쯤 됐고, 같은 사무실의 공무원이라고 했다. 축하한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술잔을 내려놓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곧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부모님도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어제 들었다고 했다. 결혼 얘기를 가장 많이 하던 엄마는 특히 그랬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동생은 1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결혼을 재촉하던 부모님에게도, 인기 없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오빠에게도.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한 태도였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축하만 하면 될 일을, 나는 왜 미안해졌을까. 우리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에게 필요 없는 짐을 얹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동생은 늘 자기 방식으로 살아왔다. 양보는 했지만, 방향은 바꾸지 않았다. 내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회사, 조금 더 나은 경제력을 말할 때도 동생은 자기 속도를 고집했다. 버는 만큼 쓰고, 가진 것 안에서 기쁨을 찾는 삶이었다. 나는 늘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봤다. 눈은 언제나 앞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동생은 자기 몫의 삶을 이미 충분히 잘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속도는 느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삶의 관할권을 지켜낸 사람이었다. 조만간 동생에게 말할 생각이다. 고생했다고. 많이 배웠다고. 나는 늘 무언가를 먼저 말하고, 먼저 삼키며 살아왔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순서를 정답에 더 가까운 쪽이라고 믿으며.
나는, 기꺼이 카스테라를 삼켜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삼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끝내 입에 넣지 않았다. 그제야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알았다. 삶에는 더 많은 것을 얻는 선택보다 덜 삼키는 선택이 필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서른여덟의 동생이 내민 반지는, 1년 동안 말하지 않음으로써 완성된 것이었다. 타인의 말이 닿지 않은 시간의 결과. 나는 이제 그 반짝이는 경계 밖에 서서, 기꺼이 축복하려 한다.
※ 이 글은 기존의 [서른여덟의 반지]를 '삶의 관할권'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쓰고 다듬은 리라이팅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