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았을 뿐, 마음으로는 멈춘 적 없던 문장들
내 인생은 열한 살 때 시작된 아주 사소한 '착각' 위에 세워졌다. 그 착각의 유효기간이 무려 30년이 넘을 줄은 나조차 몰랐다.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임시교사로 오신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전 학기 나는 오락실을 자주 간다는 이유로 꽤 찍혀 지냈다. 반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았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눈빛. 그 시절의 나는 학교가 편하지 않았다. 2학기가 되며 선생님이 바뀌었지만, 이미 나는 학교생활에 꽤 흥미를 잃은 뒤였다.
어느 날 글짓기 시간이었다. 무언가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기에 교실 뒤편에 있던 명심보감을 꺼내 읽고 독후감을 썼다. 하필 집어 든 대목이 '물질에 집착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잘 써야겠다는 마음도 없이, '돈보다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식의 문장을 어린아이의 서툰 언어로 옮겨 적었다. 매일같이 오락실에 갈 동전 몇 개를 쥐고 다니던 소년이 쓰기에는 꽤나 기특하고도 엉뚱한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내 글을 크게 칭찬했다. 아마 어려운 사자성어와 고어를 제멋대로 해석해 쓴 그 문장들이 선생님 눈엔 독특해 보였던 모양이다. 교실 한가운데서, 다른 아이들 앞에서 박수를 받았다. 그 순간의 공기가 이상하게 또렷하다.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인정’이라는 것을 받은 순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좋아하게 되었다. 잘 쓴 글을 찾아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베껴 쓰기도 했다. 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좋았다. 시간이 흘러 생업에 매여 정신없이 살다 보니, 글은 어느새 삶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나는 글 좀 쓰는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글을 쓰지 않을 때조차 풍경들을 보며 머릿속으로 문장을 골라내곤 했다. 기록되지 않았을 뿐, 마음으로는 멈춘 적 없이 글을 써온 셈이다. 그렇게 쌓인 마음의 초안들이 어느 순간, 별다른 계기 없이 다시 펜을 잡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 글 잘 쓰나?”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초등학교 칭찬에서 비롯된 그 질문을 꽤 오래 붙들고 살았다. 아직 잘 쓰지는 못한다는 것도 안다. 다만 ‘글 잘 쓰는 사람인 척’ 버티며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사실 아주 사소한 칭찬 하나였다.
지금도 아무도 읽지 않을 문장을 쓴다. 그래도 괜찮다.
이 문장들은 결국 '나'라는 체를 통과해 걸러진 기록들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