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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인아 Dec 18. 2022

상담일지: 말이 안 나와요 선생님

2022-12-17


입 밖으로 뱉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뱉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이 나의 어릴 적 엄마 같을까 봐 끊임없이 말을 삼킨다.

삼킨 마음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감정을 갉아먹고 우울의 늪으로 천천히 끌어당긴다.

이전 회기에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조금 덜 다루고 싶었던 공부와 관련된 신경 지각을 다루었다. 내가 가장 다루고 싶었던 주제를 치워두고 덜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를 했더니 감정의 억제는 더더욱 심해지고 웃고 싶지 않은데 활짝 웃으며 회기를 마무리했었다. 그랬더니 일주일이 고통스러웠다.


역시 삼킨 말은 다시 뱉어야 속이 시원해지나 보다.

회기의 텀을 일주일보다 길게 잡으려 했지만 결국 하지 못한 말을 하기 위해 다시 토요일로 예약을 당겼다.


선생님을 보자마자

“선생님 제가 저번 회기에 하고 싶은 말을 삼켰더니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상담 안 하는 10일이 너무 평화로웠어서 상담에 와서 말할 거리가 없는데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어요. 근데 선생님이 제가 말할 거리가 없다고 하면 저에게 실망할까 봐, 내가 말할 거리를 분명하게 가져왔을 때, 반가워해주셨던 게 눈에 밟혀서 말을 삼켰어요.”


 이와 더불어 내가 왜 자꾸 말을 삼키는지 내 어릴 적 기억과 말을 삼켜서 아쉽고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같이 말했다.


나는 이십 대 후반에 온 지금도 내 생일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러주는  생일 축하 노래가 좋다. 어릴 적 생일은 챙기지만 양가감정이 너무 심했던 부모와 보내는 생일이 너무나 외로웠고, 엄마가 ‘너는 생일파티 필요 없지?’하고 물었을 때, 고민하며 대답하지 못했던 나는 그렇게 생일파티가 필요 없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우리 집에 케이크가 생겨도 먹는 사람이 없어 점점 케이크를 사지 않게 되었지만, 나는 케이크에 초를 붙이고 사랑 가득한 어른들의 보호와 또래 친구들과 둘러 싸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내 생에 오기를 끊임없이 간절히 바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 이 나이까지도 욕구가 덜 채워져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라 창피할 때도 있지만 그게 너무나 좋은데 어떡해.


이런 내게 누구보다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고, 올해 내 생일날, 친구들과 생일 밥을 먹으러 만나 같이 카페에 있다가 예약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려고 했다. 친구들은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내가 먹을 케이크를 사 와 나에게 선물해주었다. 나는 그때 케이크를 선물 받아 나 혼자 케이크를 먹는 것 보다도 케이크를 열어 초를 붙이고 다 같이 생일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 그래서 친구가 밥을 먹기 전 배가 고프다길래

“우리 케이크 먹을까?!” 하고 물었다.

사실은 ‘나 케이크 열어서 노래 부르고 싶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하지 못한 채.

진짜 케이크를 먹자는 건 줄 알았던 친구는 나 혼자서 집에 가서 맛있게 먹길 바라며 거절했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선생님께서 돌아가면 어떻게 하고 싶느냐 물었다.

“나 생일 축하 노래 부르고 싶어!”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거기가 과거의 엄마와 가 아닌 친구들과 있는 현재임을 알려주는 단서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회기를 진행하고 있는 순간에도 엄마가 아닌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현재임을 깨닫게 하는 단서들을 찾아 자원으로 써보라고 알려주셨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엄마와 눈, 코, 입, 목소리도, 말투도, 목소리의 톤과 차분함까지 다른 이들을 곱씹어보았다.


이 자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또 말을 삼켜서 마음이 괴로울 것 같을 때 그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하고싶은 말할 거리가 없어서 상담을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내가 바쁠 때에도 미루고 싶은 마음과 선생님을 보고 싶은 마음, 기억이 올라와 힘들어서 상담하고 싶은 마음과 기억이 수면 저 아래로 내려가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을 ‘그러면 안돼, 왜 이렇지?’ 가 아니라 그 경험 그대로 겪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파동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감정과 경험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려고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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