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5
나는 내가 원하는 꿈을 다 이뤘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고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내가 원하는 지역에서 원하는 직장을 골라 일할 수 있다.
이 완벽한 조건과 환경을 가진 나는 지금 이순간도 죽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내가 죽지 말아야하는 가장 큰, 아니 거의 유일했던 갖고 싶은 직업 되기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갖고 싶은 직업을 갖고 살아가기’가 아닌 ‘갖고 싶은 직업 되기’가 꿈이 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숨쉬는 모든 순간이 허무하고 공허하다. 상담에서 찾은 내 욕구는 ‘내 마음대로 살기’였다. 하지만 내가 속한 사회와 환경은 내가 마음대로 살게 두지 않는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나는 사회가 주는 압박감을 다른 이들에 비해 강하게 느껴 평균에서 멀어보이는 나의 욕구과 삶의 방향이 떳떳하지 못하고 자꾸 숨겨야할 대상으로 여긴다. 나는 결혼하기 싫지만 한창 들끓는 20대 후반의 친구들의 이야기 소재는 연애와 남자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런 수다 소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반자동적으로 귀가 막히고 조금 울적해진다. 내 기억과 아픔이 은은하게 나를 덮쳐오기 때문이다. 원할수도 없기에 가질 수도 없으며,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함을 거부하는 신념 때문에 혼란스럽고 힘이 든다. 양가감정은 나를 갉아먹고 불태운다.
또 하나 가슴이 찢어지는 부분은 정서적으로 의지할 가족이 없이 자라 정서적으로 의지할 가족같은 대상과 소속감을 느끼는 것을 갈망한다는 것, 하지만 가족에게 받은 상처가 수만가지라 나는 영원히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은 나를 또 다시 사이렌의 노래 같은 죽음의 부름에 홀리듯 끌리도록 만든다.
나에게 본가는 최소한의 자식된 도리를 하고자 일년에 몇번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내려가는 곳이다. 내려가서는 수면제도 소용없는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우울증의 심화는 덤이다.
나의 트라우마의 7할 이상은 가족 구성원이 담겨있으며 나 또한 그들의 트라우마 기억에 있을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피로 물든 남보다 못한 사이이다.
나에게는 홈 스윗 홈이라 부를 수 있는 본가가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태어나보니 그저 내 운명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직은 너무 어렵다. 이 ‘받아들이기’는 조금만 천천히 상담에서 계속 다루다보면 언젠가 또 되어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