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면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도에 들어 글쓰기가 뜸해졌다. 나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마음의 고통에서 흘러나온 생각의 타래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올해 2월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했고, 3월부터 인생 첫 연애를 아주 빠르고 진하고 깊게 시작하여 화르륵 불타오르는 화염 같은 5개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 후, 영혼이 사라질 것 같은 고통의 이별을 겪고 시간이 흘러 연말 분위기 나는
오늘을 맞이했다.
연애를 하기 전까진 몰랐다.
왜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구제되는지,
왜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못 놓는지,
왜 이혼하지 않은 채 내연남 내연녀를 두는지,
그런데 이제 알겠다.
연애는 이성으로 하는 게 아니고 본능과 감정에 지배되는 강렬한 힘에 의해 좌우되는 성질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첫 연애 대상이 첫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속삭이고 고백부터 이별까지 모든 과정을 겪은 ‘첫 연애 대상’이라는 타이틀은 무겁고도 무거웠다. 그렇다고 여기에 나의 첫 연애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를 읊조리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지나간 인연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며 아련함의 증폭일 뿐일 테니 나 자신에게 그런 감정경험을 겪도록 인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할 수 밖에 없는 또렷한 사실 하나가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난 가장 큰 이유가 내 병증, 우울증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여전히 내 기억에 아로새겨져 다음 인연의 시작이 더욱 두렵고 아픈 대상이 되게 만든다.
그 사람은 우울증을 겪던 동문이 부모님과 동반약물자살로 죽은 경험을 안고 있던 사람이었다. 연애 초반에는 불타오르던 사랑 때문에 그에게 다가오는 연애대상의 우울증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매일밤 약을 먹으며 매주 상담치료를 가고, 가끔 눈물을 흘리면서 기억과 가족으로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힘에 부쳤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많이 사랑했는지, 갈등이 무서워 말하지 않고 참아왔는지 모르지만, 나에게 전혀 티 내지 않으며 견뎌주었다. 그런 아픈 나를 보면서도 잘 견뎌주며 곁에 있어주는 게 나는 정말 고마웠고, 내 삶에서 처음 가져보는 감격에 겨운 관계였다. 하지만 그 불타던 사랑의 힘이 시들어가는 시기가 오니 버틸 수 있는 마음의 지구력도 떨어져 갔다. 그는 나를 봤을 때 표정이 이전보다 무덤덤했고 마음이 식은걸 티를 냈다. 그렇게 나는 깊은 사랑 속에 있는 채로 사랑이 식은 상대가 고하는 이별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이유를 모른 채 이별을 맞이했을 때는 내 얼굴과 외형을 칭찬하며 좋아하던 그가 마음이 갑자기 식었다니 이해가 안 됐고, 상대의 취향이 하루아침에 변한 줄 알고 분노에 사로 잡혔다. 그래서 분노에 가득 찬 눈물로 수일을 채웠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수일이 지나고 어렵게 시간이 맞아 얼굴을 보고 대화할 수 있어졌을 때 궁금했던 것을 전부 물었다. 그에게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물었을 때, 나는 내 우울증이라는 존재가 그의 동문의 죽음의 회상의 스위치를 켜 불안을 자극해 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연락의 텀으로 자주 트러블이 있었던 사이이면서도 나에게 많이 맞춰줬던 그가 연락이 불가피하게 안 될 때, 상대가 사라졌을까 봐 심한 분리불안에 떨 때면 내가 그 때문에 부정적인 선택을 할까 봐 무서워했다며 말해주었다. 나는 우리가 좋은 관계일 때 왜 말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회피형이며 연애가 나와 처음이던 그는 그런 것들을 전부 상대에게 말하고 조율하고 맞춰가야 하는지 몰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나는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의 아픔으로 자신의 아픔이 건드려지는 이 사람을 보내줘야겠구나’
내 병증을 이해하고 견디는 강한 사람이라 믿을 만큼 그가 건강해 보였던 건 연애 초반의 불타는 사랑이라 가능했다고 믿어야했다. 내 우울증이 그에게는 도파민의 착각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무게이구나하며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 우울증 때문에 마음의 불씨을 꺼트리면서까지 본인을 지키고 싶어 하는 그를 마음 편이 보낼 수 있었다.
헤어진 후, 오늘 두 달 반이 지나있다. 연애가 짧았기 때문인지 죽을 것 같던 이별 후유증도 생각보다 짧게 지나갔다. 마음 정리가 다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인연을 찾아도 약을 먹고 상담치료를 받는 나를 알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시작하는 모든 인연은 내 마음속에서 한없이 가벼워졌다.
‘어차피 우울증 못 말할 것 같은데 어때, 오늘 하루 재미나보자.‘
‘이 사람도 정신병 있는 나를 알게 되면 떠나겠지.’
‘빨리 나에게 마음을 줄 거 아니면 오지도 마.‘
이런 마음들로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
나는 안다. 이 모든 부정적 회로는 내가 우울증을 낫기 위해 꾸준히 약을 먹고 상담치료라는 노력을 하며 병을 조절하고 있으며 치료의지가 있는 사람임을 알아주는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어보는 경험을 하면 치유될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정착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까지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통해 가야 할 길이 멀다.
가끔은 항우울제를 빼버리고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찾아올 사랑을 무작정 꿈꾸며 건강한 상태로 기다리기 위해 ‘살아가는 게 이런 건가보다’ 하며 매일밤 착실히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