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imento(펜티멘토) - 지워진 흔적

by 호시


펜티멘토(Pentimento)는 이탈리아어로 '후회'를 의미하는 'pentirsi'에서 유래된 미술 용어다. 화가가 작업 과정에서 구도를 수정하거나 덮어버린 흔적이, 시간이 지나 물감이 투명해지면서 캔버스 표면 위로 유령처럼 다시 드러나는 현상을 뜻한다.


당대의 수많은 화가들이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숱하게 그리고, 덮고, 고치고, 손보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그 수정의 흔적들이 오점이 되어 남지 않도록 두껍게, 공들여 덮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하게 캔버스 표면 아래로 깊숙이 깔린 이전의 흔적들은 화가의 공들임이 무색하게 영원히 가려지지 않고 수백 년의 세월을 지나며 자신을 덮었던 레이어들 위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 흔적을 두고 '결점'이라던가, 작가의 '부족함'이라고 지적하는 후대의 비평가나 연구자는 없으며, '저 작품은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감상자들은 없다. 그저 모두들 이 모든 것을 '작품 그 자체'로 누릴 뿐이다.


세상에 태어난 후로 숱한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자의로, 타의로 참 많은 것들을 경험하지만 결코 그 모든 경험을 '나'로 받아들이진 않는 듯하다.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말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그때 한다고 말할걸.

그때 그 자리에 내가 갔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 더 참아볼걸.

그때 못 이기는 척 같이 했다면.


아마도 몇 번은, 혹은 숱하게 내뱉아보았던 이 말들은 화가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생이라는 캔버스 위에서 했던 실수나, 어떻게든 최대한 살려보고자 이렇게 저렇게 다시 붓을 들었던 일들에 대한 미련일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매일 새로 받은 '현재'라는 물감으로 과거의 그 순간들을 부지런히 덮는다. 바쁜 일상으로, 새로운 성취로, 때로는 짙고 차가운 회피로.


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공허한 순간이나, 왜인지 모르게 센치해지는 새벽이면 어느샌가 그 밑색이 표면 위로 올라와 '나야, 여전히 캔버스 위에 있어.'라고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 완벽하게 덮었다고, 적어도 누군가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그리고 애써 시선을 돌린다면 내 눈에도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커버했을지라도 여전히 나의 캔버스 위에 존재하며 아주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존재들. 바로 내 삶의 펜티멘토다. 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렘브란트가 노년에 그린 자화상들은 우리에게 훌륭한 힌트가 되어준다.


렘브란트 반 레인, <63세의 자화상> (1669)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정도로 캔버스 곳곳에서 기묘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희미하게 겹쳐진 손가락, 미묘하게 어긋나 있는 옷깃의 위치 같은 것들. 엑스레이로 투시해 보면 이 흔적들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매끄럽게 완성된 젊은 날의 초상과 달리, 노년의 자화상에는 거친 붓 자국과 덧칠의 흔적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노년기의 렘브란트는 후회와 망설임의 흔적을 지워내지 않고 겹겹이 쌓아 올려 완벽함을 연기하는 대신, 거칠고 투박한 시간의 질감을 캔버스 위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소위 명작이라고 손에 꼽는 작품과 그것을 남긴 거장도 작업 과정에서는 숱하게 고치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고, 망설임의 순간들이 있었으며, 고민하고 다시 그리며 완성으로 나아가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랜 세월을 거쳐 마침내 완연하게 피어오른 작품 앞에서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이감과 실재감을 느끼며 그 위로 자신을 겹쳐보기도 하고, 어떤 경험을 떠올려보기도 하면서 감흥을 마음에 들인다.


삶이 한참 무르익어 완연해진 시절의 렘브란트처럼 '완벽'의 기준을 내려놓고 내 삶의 시간에 들어온 숱한 경험들을 한데 모아 찬찬히 한번 들여다보면 어떨까. 깔별로, 카테고리에 따라, 각 잡아 정돈하고 정리하지 않고 눈 닿는 곳 안에서 편하게 훌훌 펼쳐놓고 말이다. 그간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거나, 아무리 올리고 또 올려도 묘한 색이 되어버렸던 구간이 명쾌하게 설명되기도 할 것이다.


"그땐 그게 정답이었어."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을 두고 수없이 되뇌었던 "그때 그랬더라면"을 이렇게 바꾸어본다면, 오늘까지의 나는 또 어떻게 보일까. '후회(pentirsi)'에서 출발한 펜티멘토가 결국 '내가 그토록 치열하게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흔적인 것처럼 말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