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원법 (三遠法) - 고원, 심원, 평원을 오가는 시선

by 호시



동양 미술사에서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는 산수화를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그림에서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한 인물이다. 그가 화폭에 담은 자연은 그저 밖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감상자가 직접 걸어 들어가 이리저리 걸어다니며 이곳저곳에서 바라보고 머물 수 있는 다차원적인 세계였다.


Guo_Xi_-_Early_Spring_(large).jpg 곽희, <조춘도>, 1072, 비단에 수묵 담채, 158.3×108.1cm,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곽희의 대표작 <조춘도(早春圖)> 앞에 서면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이를 감상하기란 쉽지 않다. 안개 낀 하단의 깊은 계곡부터 화면 중앙의 거대한 산봉우리, 그리고 아스라이 멀어지는 여백까지 화면의 밀도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가 평소에 자연을 수없이 관찰하고 거닐며 얻은 경험과 이치를 가슴속에 담아두었다가 작업실에 돌아와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그려낸 '관념산수화'이기도 하다. 즉, 화가가 고정된 자리에서 풍경을 관망하며 그린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연 속을 유람하며 축적한 무수한 시점과 기억을 입체적으로 융합하여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무려 세 가지 시점을 관찰할 수 있다. 산 앞에서 계곡의 깊이를 들여다보고(심원), 산 아래에서 정상을 우러러보며(고원), 탁 트인 지평선을 멀리 내다보는(평원) 시점이 한 화면 안에 모두 등장한다. 곽희가 정립한 이 '삼원법(三遠法)'은 보는 사람들에게 화폭 안의 풍경을 자유롭게 산책하는 유람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시선의 교차를 통해 깊은 철학적 사유와 위로를 선사한다. 이 삼원법으로 그려진 산수화 안에는 거대한 산세(고원) 아래로 아주 작게 그려진 봇짐 싼 나그네나 조각배(심원)가 늘 묘사되어 있어서, 감상자는 압도적인 대자연의 질서(거시 세계)와 그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인간의 삶(미시 세계)을 동시에 조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의 교차를 통한 삶의 객관화 경험을 감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해본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삶의 경험을 어떻게 엮어낼 것인가에 대한 화두로 이어진다.


삶의 궤적을 기록하고 조망하는 일에 이 삼원법을 적용시켜보면 새로운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매일의 미시적인 일상을 낱낱이 복기하는 과정은 삼원법의 첫 번째 단계인 '심원(深遠)'에 해당한다. 삶을 극도로 높은 해상도로 들여다보는 줌인(Zoom-in)의 상태다. 이 렌즈를 통과할 때 우리는 자신이 파놓은 사건과 감정의 깊은 구덩이를 직면한다. 당장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일과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며 바닥을 파내려 가는 시간은, 전체의 흐름이 보이지 않기에 종종 끝이 보이지 않기에, 종종 끝을 알 수 없는 지난하기만 한 삽질처럼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개별적이고 파편화된 궤적이 쌓인 후, 시선을 위로 끌어올려 '고원(高遠)'의 조감도로 내려다보거나 '평원(平遠)'의 지평선으로 시야를 넓히면 이 경험들은 전혀 다른 층위를 얻게 된다. 수직으로 끝없이 추락하거나 땅을 파고 들어가는 중이라고 믿었던 궤적이, 시점을 달리하는 순간 수평으로 넓게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장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대중없이 평면 위로 흩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풍경이 시점이 달라지는 순간 수직으로 깊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장면이 될 수도 있다. 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가 겪은 사건과 감정은 전혀 다른 질감을 가진 경험이 된다.


더 나아가, 이 거시적인 시야(고원과 평원)를 확보하면 흩어져 있던 개별 요소들을 새롭게 조합할 수 있는 여백이 생긴다. 초고해상도의 심원에서는 그저 무용한 삽질이자 고통의 파편이었던 것들을, 어떤 궤적으로 연결하고 조합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내러티브는 놀라울 정도로 다른 서사가 되어 흘러가기 시작한다.


PS01001001_jng010_2020_0929142445174_jng010000-000-00001.jpg 김정희, <세한도>, 1844, 종이에 수묵, 23.9×108.2cm, 국보 제180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렇게 시점을 이동시켜 파편화된 경험을 재조립하는 시도를 한 인물도 있었다. 조선의 학자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가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유배라는 척박하고 깊은 구덩이(심원)에 놓였을 때, 그는 시선을 좁은 유배지의 흙바닥이라는 미시적 현실에만 묶어두지 않았다. 오히려 시선의 축척을 끌어올려 한겨울 추위 속에서도 잎을 떨구지 않는 소나무의 기개(고원)를 화폭에 담았고, 화면의 나머지는 군더더기를 걷어낸 여백(평원)으로 비워두었다. 고립된 상황 속에서도 시점을 이동시켜 경험의 조각들을 새롭게 엮어냄으로써, 유배의 시간을 자신의 정신적 영토를 확장하는 서사로 다시 써 내려간 것이다.


고정된 자리에서 벗어나 삶이라는 풍경 속을 직접 거닐며 여러 시점의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우리는 좁은 구덩이를 벗어나 마음껏 내달릴 수 있는 광활한 영토를 마주한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해가 바뀌어도 여전해 보인다 여겼던 무수한 시간을 하나의 캔버스 위에 펼쳐두고 능동적으로 시점을 이동시킬 때, 우리는 개별적인 경험의 조각들을 전혀 다른 서사로 완성해 낼 수 있다.


이 다각적인 시점의 이동이 허락하는 무한한 재조립의 가능성 안에서, 우리는 결국 내 삶의 지도 위 어디든 이를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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