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죄책감은 있었다.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도 있었다.
그러나 리카에게 그것이 범죄라는 의식은 없었다. 왜냐하면 고조는 고타의 가족이고,
고타의 말대로 그 예금총액에서 보면 고타가 빌린 액수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만 빌려서 이자를 붙여 돌려놓으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고타가 반년 이내에 갚지 못하면 자신이 대신 갚아주면 된다고조차 생각했다.
_<종이달> 중에서
소설 <종이달>의 주인공 리카는 은행에서 근무하던 평범했던 주부 계약직 사원이었다. 그런 그녀가 몇 년 뒤 은행에서 10억 원을 횡령하고 외국으로 도주한 범죄자가 된다. 평소 그녀의 성품과 행실을 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소설은 평범했던 그녀가 왜 고객의 돈을 횡령하고 은행 서류를 위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주변인들의 증언을 통해 과거의 퍼즐을 맞춰본다.
시작은 너무나 평범해서 별일 아닌 채 지나갈 수 있는 일이었다. 은행 내방이 힘든 나이 든 VIP 고객의 집에 직접 찾아가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던 리카는 그날도 고객이 입금 해달라는 돈을 받아 든 채 퇴근 길에 올랐다. 그러다 백화점에 들렸고, 물건을 고르다보니 10만 원 정도가 부족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고객이 맡긴 현금 봉투. 현금인출기까지 가기는 귀찮고, 어차피 가는 길에 들러 돈을 찾아 채워 넣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리카는 처음으로 고객의 돈에 손을 댄다.
처음엔 마음먹은 그대로 돈을 채워 넣었다. 하지만 시작은 쉽고 멈추기는 어려운 법. 그녀는 반복적으로 고객의 돈에 손을 대기 시작하고, 카드 값이 모자랄 때면 다음 달 월급으로 채워 넣을 요량으로 고객의 돈으로 자신의 카드 값까지 막기 시작했다. 갚아야 하는 돈의 크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었던 리카는 급기야 예금증서 위조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렇게 해도 아무도 그녀의 범죄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더욱 대범해진 그녀는 횡령 금액을 올려나가고, 그렇게 그녀의 건너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리고 만다.
한 직원의 회사 돈 횡령, 어느 기업 간부의 억대 리베이트. 지금은 이런 사건들이 뉴스가 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이 되었다. 검은 돈의 액수도 보도가 되었다하면 몇 억 원. 몇 백만 원, 몇 천만 원은 뉴스로조차 다뤄지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어디 횡령 뿐이겠는가. 2017년 구의역에서 일하다 스크린도어와 열차 사이에 끼어 숨진 한 청년의 사고로 밝혀진 서울메피아들은 조직의 이익이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보다는 ‘있는 동안 더’, ‘나가서도 받을 수 있게’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고 있다. 가만히,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로 여겨지는 사회가 된 것만 같다.
사회 초년생 땐 그런 뉴스를 보다보면 나와는 아주 거리가 먼, 남의 일로만 생각되었다. 마치 범죄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저 허황된 이야기일 것이라고 여겨졌었다. 어느 신입사원이 ‘나는 반드시 저 회사에 들어가서 횡령을 하겠어’라는 생각을 할 것이며, 어느 사회 초년생이 ‘어차피 월급은 들어오는 거니 월급 말고 회사의 구멍을 찾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어’라고 생각하겠는가. 일단 ‘기업’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도록 만들어 두었고, 나 같은 사람이 장난칠 수 있는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니니깐.
그런데 회사에서 일 하다보면 공고해 보이던 시스템에도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며, 과연 이 회사라는 것에 ‘주인’이 있는 것인가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경영학 시간에 배웠던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말은 교과서에만 있는 정의일 뿐, 회사 돈은 쓰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회사는 경영이 어렵다며 사람들을 잘라내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한 달에 서너 번씩 회식을 명목으로 흥청망청 써대고 외주라는 가성비(?) 좋은 인력을 사용해 비용절감을 한다. 어차피 회사의 돈이란 쓰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씩 경계를 넘어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들이다. 회사 비품을 집으로 가져가 쓰거나,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쓰거나, 남은 홍보물이나 당첨자들이 찾아가지 않은 경품 등을 담당자와의 친분을 내세워 내 것으로 만든다. 물론 ‘뭐, 이런 것쯤은 회사 다니며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의 초년생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런 것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조심조심 들킬까 봐 무서워하지만 이것도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당연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럴해저드 [Moral hazard]
특정인의 행위로 인한 위험의 부대비용을 타인이 부담하게 됨으로써 그 특정인이 위험행위에 대한 주의를 덜 기울이게 될 때를 의미한다. 경제학적으로는 주로 다양한 거래계약 체결 이후 발생하는 어느 한쪽 당사자의 행위로 인해 다른 쪽 당사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을 의미한다.
“너니깐 하는 말인데, 나 솔직히 이 회사에 남은 애정 없어. 그래서 난 이 일을 따서 널 주고, 10% 수수료를 받을까 해. 알고보니 남들도 다 그렇게 하더라고.”
잠깐씩 쉴 때마다 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는 친구 H와 일을 한 적이 있었다. H가 내게 아르바이트처럼 일을 줄 때도 있고, 역으로 외주를 찾는 업체가 있으면 내가 H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이번에도 예전 회사 동료인 K가 입찰 건에 대한 외주자를 찾는 전화를 해왔길래 H를 소개해줬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그 회사에는 입찰 제안서를 만드는 전담 팀이 있었음에도 그 일과 전혀 관련이 없는 K가 이 일에 대한 경쟁입찰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이상했지만 외주야 일 주면 하는 것이 당연하니 H는 일을 받겠다고 했다.
H가 제안서를 만들고 있던 중 구체적인 비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 일로 내가 K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비용 문제도 그렇고 일 진행 과정 자체가 좀 이상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내부에서 하면 비용이 세이브될 수 있는 걸, 왜 굳이 돈을 써가며 바깥에 프로젝트를 돌리는 거예요? 게다가 K 당신도 담당팀에 일을 넘기면 될 걸 왜 굳이 모르는 일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돼요.”
그러자 K가 내게 뉴스에서나 봤을 법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H 업체에 일을 몰아주고, 난 전체 프로젝트 예산의 10%를 받을 생각이거든”
‘리베이트’라는 단어만 내뱉지 않았지 K는 리베이트를 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우리 비용은 건드리지 않은 채 자기 몫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금액적인 부분만으로는 반박이 불가했다. 예를 들어 처음 일을 진행할 때 100만 원으로 합의를 하고, 회사에는 110만 원이라고 보고를 해 110만 원으로 계산서를 끊는 방식이었다. 즉 외주업체는 처음부터 100만 원으로 알고 일을 진행했으니 금액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없고, 그가 더 얹어서 입금해주는 돈만 돌려주면 되는 것이었다. “뭐, 내가 당장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지. 어쨌든 이 입찰은 따내야 하는 거니깐.” K는 자기가 그 말을 내뱉고도 민망했는지 서둘러 말을 마무리했고, 정확한 요구보다는 운만 띄운 채 전화를 끊었다.
혼란스럽고, 무섭고, 갈등되었다. 이건 잘못된 일임은 분명했다. 일단은 투명하지 않으니깐. 내가 이 일을 모두에게 당당하게 밝히고 일을 진행할 자신이 없으니깐. 그런데 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따지고 들려고하자 뭐가 잘못된 건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을 한 사람은(외주 업체) 자신이 제시한 몫에 합당한 대가를 받을 것이고, 그 대가가 아닌 추가적인 돈을 더 줄 테니 수고 조로 돈을 달라는 사람에게 못 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주지 않아도 될 10%에 해당하는 비용을 잃게 되는 ‘회사’인 것인데 그 회사는 실체가 없지 않은가. 내가 그 회사를 생각하면서까지 이 매출을 놓자고 친구에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 내가 굳이 먼저 나서서 이 일을 밝혀 얻을 것은 무언인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물론 이 일은 경쟁입찰에서 떨어지며 벌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도, H도 이 일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검은손의 유혹은 내게도 엄청나게 가까운 데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나 역시 그 앞에서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년 차였을 때였나.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저자 한 분이 책을 출간하고 고맙다며 밥을 사겠다며 찾아온 적이 있었다. 막내였던 나, 책을 편집했던 선배, 그리고 팀장과 함께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책을 만들면서 있었던 이야기, 원고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그동안 못다했던 개인적인 이야기 등등을 하며 으레 책을 출간하고 나면 책거리를 하듯이 모두가 서로를 다독이고 축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집으로 자리를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저자 분이 갑자기 양복 춤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원고를 멋진 책으로 만들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이건 그냥 저의 작은 성의예요. 받아주세요”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 본 소위 ‘봉투’였다. 순간 나는 궁금했다. 우리 팀장은 저 봉투를 받을까, 이런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봉투를 본 팀장은 진심으로 깜짝 놀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선생님, 저희는 할 일을 했을 뿐이고, 저희 수고비는 회사가 월급으로 보상해주고 있어요. 오히려 좋은 원고로 책 만들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정 주시고 싶으시면 이 돈으로 책 사셔서 주변에 널리 홍보해 주세요. 저희한테는 그게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지금 그때 그 일이 떠올랐던 건, 당시 십 몇 년을 일 했던 그 팀장이 했던 행동이 어쩌면 쉽지 않은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십 년이면 회사에 대한 실망과 회의감도 쌓여 있었을 테고, 일도 재미가 없었을 거고, 그 역시 어쩌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본인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알아서 주신 것이며, 받아도 아무도 모를 일일 텐데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아무리 당연한 일일지라도 꽤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라는 것을,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세상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월급쟁이. 물론 너무나도 지겨운 생활이다. 부당한 일도 많고 억울할 일도 많다. 하지만 이것 역시 내가 깨끗했을 때 할 수 있는 투정이다. ‘너도 그랬으니 나도 그럴거야’라는 발상은 성숙하지 못한 자세이며, 최소한 내 남편과 내 아이 앞에서는 떳떳할 수 있게 행동하는 것이 신세 한탄하며 살지언정 부끄러움은 없는 삶일 것이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다지만 인간보다 위에 있을 수는 없으니깐.